The Authoritarians (권위주의자들)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는 길에 흥미롭게 읽은 PDF 책이다. 수십 년 동안 권위주의적 성격을 연구한 마니토바 대학 심리학 교수 밥 알트마이어가 그의 연구를 심리학 전공이 아닌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책으로,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의 심리와 그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 실험 결과, 그리고 어째서 이러한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지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심리학 연구를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치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내용이고, 실제로 저자도 책 끝머리에서 권위주의의 위협에 대한 대응책을 제안하고 있다.
권위주의자란 무엇인가? 크게 권위주의적 추종자와 권위주의적 지도자가 있는데, 전통적으로 심리학 연구는 권위주의적 추종자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 권력을 바라는 사람이야 언제든 있게 마련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추종자의 존재이니 말이다.
권위주의적 추종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으로 알아볼 수 있다. 첫째, 사회적 권위에 대한 강한 종속 성향이 있다. 사회적 권위란 국가, 종교, 부모, 교회 등 사회적으로 용인된 권력을 가리킨다. 둘째, 그 권위에 용인받거나 명령받으면 강한 공격 성향을 보인다. 이 공격 성향은 폭탄 테러처럼 물리적일 수도 있고, 매국노라고 매도하는 것처럼 감정적이고 사회적일 수도 있다. 셋째, 사회의 평균이나 전통에 맞추려는 획일화 성향이 강하며, 이 사회적 평균을 도덕적 기준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소수 권리에 대해서는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권위주의적 성향을 측정하는 도구로는 간단한 테스트가 있다. (계산하기 쉽게 PHP 로 만든 것이고, 귀찮아서 번역은 안했다.) 나올 수 있는 가장 낮은 점수는 20이고, 가장 높은 점수는 180이다. 뭐 점수가 몇 점이면 당신은 어떤 사람이다 같은 건 없고, 점수에 따라 얼마나 행동을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있나 보는 용도이다. 권위주의적 성향이 높다고 할 때는 저 테스트에서 점수가 높게 나왔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권위주의 점수가 높은 권위주의적 추종자에 대한 수십 년에 걸친 연구와 심리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기본적으로 세상은 말도 못하게 위험하고 금방이라도 사회의 안정된 구조가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과 변화에 위험을 느끼며,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권위에 의존한다. 그러니 새로운 생각이나 사람을 두려워하며, 대화와 협력보다는 적대감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밖에. (요다옹이 두려움을 가리켜 다크포스의 근원이라고 한 것도 괜한 말은 아닌 모양이다.)
권위주의자들은 비판적 사고 능력도 부족해서, 권위주의 성향이 낮은 사람에 비해 상호 모순되는 명제에서 모순을 발견하지 못하며 (예를 들어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와 '공립학교에서 특정 종교의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에 둘 다 동의한다든지), 원칙과 규범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위선 성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공립학교에서 기독교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에는 동의하고 '공립학교에서 불교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에는 반대).
또한,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은 자기에게 듣기 좋은 얘기를 하는 사람은 진심이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예를 들어 한 실험에서는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글을 보여주고, 이 글을 쓴 사람은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글을 쓰라는 과제를 받았다고 알려주었다. 놀랍게도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할수록 그 글이 이 학생의 진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했다.
이쯤 되면 부도덕한 정치인이 권위주의적 추종자를 이용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쉽게 알 수 있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해주면 자기편이라고 굳게 믿을 테고, 실제 행동은 말하는 것과 아무리 모순이 많아도 그 모순과 불의는 적당히 합리화할 테니까. 게다가 그 정치인을 사회적 권위로 인정하면 (교회에서 그에게 투표하라고 한다든지) 그를 비판하는 모든 목소리를 맹목적으로 공격할 테니 이 얼마나 편리한가.
반면 권위주의적 성향이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에 비해 비판적 사고 능력이 강해서, 자신이 지지하는 주장이든 반대하는 주장이든 같은 원칙을 적용하는 일관된 사고를 보인다. 또한, 권위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보다 모순을 쉽게 발견하고, 새로운 사실과 논리에 맞추어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이들은 자신과 같은 의견을 표시한다고 해도 쉽게 진심이라고 믿지 않는다. 즉 권위주의 성향이 낮은 것들(..)은 '우리 편'이 아닌 '원칙'을 따를 가능성이 크므로 정치인이 이들의 지지를 얻으려면 듣고 싶은 얘기를 해주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실제 원칙을 따르는 골치 아픈 짓을 해야 할 것이다.
권위주의적 성향에 대해 이해하고 나면 정치와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성향이 작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물론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이는 경향은 경계해야겠지만, 권위주의적 성향이 행동에 대한 강력한 통계적 예측력이 있다는 것이 일관된 연구결과이다.) 여신도를 강간한 목사를 피해자가 고소하려고 하니까 신도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피해자의 피를 말린다든지, 기만을 빌미로 시작한 전쟁을 무조건 지지하고 반전주의자는 모두 매국노로 몰아버린다든지.
한 마디로 자신이 따르는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권위는 무슨 악행을 저질러도 부인하거나 정당화하고, 이 권위에 반대하거나 이 권위가 적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주장의 근거나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맹목적 적대감을 보이며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바로 권위주의적 추종자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얼마나 기만하고 이용하기 쉬운지,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이용해서 얼마나 악몽 같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하는 예는 전에도 많이 보아왔고 지금도 많이 볼 수 있다.
권위주의적 추종자를 논하기는 했지만 같은 사람의 권위주의적 성향도 나이와 경험에 따라, 또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가적 위기가 닥치면 사회적으로 불안이 고조되면서 단체적으로 권위주의 성향이 상승하는 효과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하나 느낀 점이라면 권위주의적 추종자에게 분노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것은 큰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권위주의적 성향이 높은 사람과는 거의 이성적인 대화를 할 수가 없으니까. 모순과 위선을 알아채지 못하는 그들의 인식체계에는 먹히지도 않고, 비생산적인 적대감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합리성이나 이성을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복잡하고 위협적인 세상이 두려워 견딜 수가 없어서 강한 권위에 맹종하는 것이니 말이다.
정말로 권위주의에 대응하는 법은 사람을 두려움으로 조종하려는 권력의 수법에 대항해서 권위주의적 추종자의 생성을 막는 것, 그리고 권위주의적 추종자의 강력한 단합력과 조직력, 높은 투표율에 대항해서 역시 단합하고, 조직하고, 투표하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세계가 나의 세계가 될 수 없도록. 그들이 갈구하는 위안인 권위의 억압이 나를 지배할 수 없도록. 개별적으로는 좀 위선적이긴 해도 크게 악하지 않지만 부도덕한 권위의 용인을 받으면 어떤 끔찍한 짓도 할 수 있는 악의 얼굴--권위주의자들의 세상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