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07 16:07 로키 TAG 경력
이제 인턴십도 일주일이 남았다. 한 달 일주일 정도의 짧은 인턴십이긴 했지만 참 느낀 게 많은 경험이기도 했는데, 그 점에 대해 이것저것 적어보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얘기면 더욱 좋고.
엄연히 직장이었으니까 일 번은 역시 일이어야겠지? (퍽) 이번에 일하면서 배운 점이라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목표 정하기, 목표 밝히기
이번 인턴십을 시작하면서 내가 1차적인 목표로 삼았던 것은 법률 조사와 글쓰기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 기간이 짧은 인턴십인 만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말이다. 2차적인 목표는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찾을 때를 대비해서 고용주에게 내보일 수 있는 법률 글쓰기 표본을 되도록 많이 쌓는 것이었다. 3차적인 목표는 역시 나중에 추천 같은 도움이 필요할 때를 생각해서 이곳에서 최대한 좋은 인상을 쌓는 것.
세 번째는 일과 인간관계에서 전반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면 되는 부분이었으니까 독자적인 목표라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1차와 2차 목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감독 연구원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내년이면 졸업반이니까 본격적으로 취직 생각을 해야 하고, 그래서 법률 조사와 글쓰기를 많이 해보고 싶다고 말이다. 고맙게도 그분이 이번 인턴십에서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얘기하라고 멍석을 깔아주셔서 얘기하기가 한결 쉽긴 했다.
자기 목표가 있으면 밝히는 게 정말로 정말로 중요한 부분이자 목표 수립과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 일 못지않게 교육인 인턴십은 더하다 해도, 내 생각에 모든 직장은 결국 자기 경력의 방향을 생각하며 밟아가는 단계이다. 자기 목표가 확실하다면 그 목표를 위해 어떤 업무를 하고 경험을 쌓고 싶은지 확실히 얘기해야 한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떡 달라고 울지 않으면 떡 먹고 싶은지 어떻게 아나.
또 하나, '가만있으면 알아서 해주겠지'는 사실 상대를 배려하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부담을 주는 거다. 결국에는 내게 뭐가 필요한지, 내가 뭘 원하는지 상대가 내 눈치를 봐서 맞춰달라는 요구 아닌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세상에 말도 없는 사람 눈치 봐서 원하는 걸 정확히 맞춰야 하는 것만한 심적 부담이 또 있나? 그건 개 혹은 남자친구를 길들이는 방법이지, 성숙한 사회인의 태도는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개나 남자도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건 반대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게 없거나 말할 용기가 안 나서, 아무 말도 없으니까 결국 상관은 아무 업무나 주고 주는 일만 하면서 끝날 수도 있다. 자기한테 결과적으로 손해일 뿐. 어떤 일이든 하면 경험은 되고 배우는 것도 생기고, 그러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목표와 주관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이미 있다면 목소리를 내서 얘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게다가 자기 경력을 위해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싶다고 밝히는 건 상관에게도 편하다. 어떤 일을 맡기면 열심히 덤벼들 게 누군지 알거든. 잘못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는 건 상관도 당연히 안다. 그래도 자기가 좋으니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일의 능률도, 배우는 속도도 다르니까 현명한 상관이라면 그 점을 잘 이용할 거다. (상관이 바보면 어떻게 하냐고? 그건 너무 고난도라서 사회 초년병도 아니고 아직 학생인 본녀는 모르겠다..ㅡㅡ;; 아직 겪어본 일이 없으니...)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 아닌가. 그러니까 자기 목표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확실하게 밝히는 게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2. 조직의 필요 생각하며 계속해서 교섭하기
슬프게도 직장은 나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조직에는 조직의 필요와 목표가 있고, 난 엄연히 그 조직 속에서 일하는 사람인 거다. 자기 목표와 조직의 이익을 되도록 조화시키는 게 자기 목표를 정하고 얘기하는 거라는 점은 이미 얘기했다. 하지만, 그건 '되도록'이지 언제나 일치할 수는 없는 거다.
내 경우는 번역 일이 그랬다. 번역 일이 내려오는 건 거의 필연이었고, 법률 조사와 글쓰기만큼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때도 있을 거라는 건 이해하고 있었다. 경계한 건 한 달 내내 번역만 하다가 끝나버리는 것. 그래서 처음부터 내 목표를 밝히는 데 더 신경 썼다. 될 수 있으면 번역보다는 조사와 글쓰기 일을 달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번역 일을 안 한다거나 하고 잘라 말하는 건 현명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조직에는 조직의 필요가 있고, 조직 속에서 일하는 이상 조직의 필요를 아예 외면하는 건 이기심이니까.
결국 인턴십을 시작해서 맨 처음 맡은 일은 원하는 업무가 아닌 번역 일이었다. (두둥) 별생각이 다 들었지. 정말 이대로 법률 전문 번역사 비슷하게 인턴십을 마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고. 하지만, 이것도 엄연히 필요한 일. 게다가 처음 일을 맡겨서 어떻게 하는지 보고 다음 일을 맡긴다는 얘기도 상사가 했었으니 더욱 말이다.
그렇다면 뭐, 답은 하나밖에 없지. 자기 욕구와 목표를 명확하게 밝히는 건 시작일 뿐, 결국 일하는 사람은 실력과 성과로 말하는 거 아니겠나. 일주일에서 열흘 준 번역 일을 절반 기한에 마치고 다음 일을 받으려고 한 마디로 죽어라 일했다. 이 당시에 동료 인턴들이 나한테 붙여준 별명이 '기계'였다. (나중에는 '보증 수표'가 됐지만.) 컴퓨터 화면에서 눈도 안 떼고 가끔 물만 마시면서 돌아가는 일하는 기계라나.
심지어는 병원 갈 일 있었을 때도 전철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꾸역꾸역 일하면서 결국 주어진 시간의 절반에 일을 마쳤다. 그리고 나서는 원하는 법학 조사 일이 나와서 신이 났지. 다시 열불나게 일해서 거의 뭐 하루인가 이틀만에 완성해서 배달하니까 그때부터 정말 감동하는 눈치였다. 나중에는 일주일에 그런 메모를 세 편 더 쓸 정도로 뭐 인정받았다면 인정받았달까.
당연히 그렇다고 늘 내가 원하는 일만 나온 건 아니고, 번역 일이나 웹사이트에 올릴 문구 같은 잡일도 나왔지. 인턴한테 잡일 안 시키면 누구한테 시키나. 그리고 잡일이라거나 나한테 도움 안 된다거나 해서 한 번도 마다한 일도 없고. 다만, 분량이 좀 많아서 시간을 잡아먹을 것 같으면 약간씩 교섭작전을 펼치긴 했다.
예를 들어 나중에 양도 많고 엄청나게 어려운 번역일이 떨어졌을 때도 역시 무지막지한 속도로 마치기는 마쳤다. (일주일 이상 준 일을 이틀 내에) 당연히 한 번 번역한 것만으로는 불완전하지만, 한편으로는 처음 틀을 잡는 부분이 가장 어렵고 교정은 비교적 쉬운 작업이기도 하다. 즉, 교정은 꼭 내가 아니어도 되고 그 잔손 많이 가는 작업을 할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
그래서 난 그 선택을 상사에게 맡겼다. 초안 번역을 그대로 보내면서, 이걸 제가 며칠 더 시간 들여서 교정할까요, 아니면 교정은 남에게 맡기고 법률 조사 업무로 넘어갈까요? 즉, 한 번에 두 가지 일은 못 한다는 걸 은연중에 밝혀서 우선순위 선택 상황을 유도한 거다. 다음 며칠 동안 번역 교정이라는 잔손 많이 가는, 그리고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을 맡길 거냐, 아니면 내가 하고 싶고 능력도 보인 법률 조사 일을 맡길 거냐?
결론? 교정 일은 다른 인턴에게 떨어지고 난 법률 조사를 시작했다. 아자. ㅡㅡV
나에게는 내게 필요한 게 있고, 조직에는 조직에 필요한 게 있다. 자기 목표를 얘기해서 이 두 가지를 되도록 일치시키는 게 좋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저런 부정합은 생긴다. 이럴 때 조직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내 이익을 챙기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언어는 성과와 실력이어야 한다.
3. 말에는 책임을 진다
내가 인턴십 내내 제일 신경 쓴 게 기한 지키기였다. 특히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하는 질문이 들어올 때는 잘 생각해 보고, 언제까지 하겠다고 하면 반드시 그날까지 하는 걸 철칙으로 삼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하는 말은 약속이 아닌 호언장담이 되어 버리니까. 그래서 정말로 그날까지 할 수 있을지 잘 생각하고, 그쪽에서 제시하는 기간이 너무 짧다 싶으면 시간을 더 달라고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정한 날짜는 무슨 엄청난 사정이 생기지 않으면 반드시 지키는 게 좋은 습관이자 나의 사회적 얼굴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가 스스로 틀림없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나름의 훈련이었달까. 일이 더 복잡해지고 책임이 늘어가면서 앞으로도 지켜가야 할 점이고.
4. 실수와 지적을 두려워하지 않기
일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상사가 원하는 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는 때가 있다. 적절히 질문과 대화를 통해서 명확하게 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애매할 땐 참 미치겠더라. 이런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모를 때마다 질문하는 거, 또 하나는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과물을 내고 지적해달라고 하는 거.
내가 선호하는 방법은 단연 후자 쪽이다. 부하는 상사가 좀 일하기 편하자고 있는 건데, 업무에 꼭 필요한 질문 외에 부하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구체적인 부분을 자꾸 질문하는 건 상사 시간을 뺏는 거니까. 그리고 눈앞에 뭔가 구체적인 게 없으면 대답하기도 참 곤란하고. 뭔가 가져오면 여기는 이런 게, 여기는 이런 게 잘못됐으니까 다시 해오라고 하는 게 편하지, 아직 만들지도 않은 결과물을 가지고 가상적인 질문에 답하는 건 참 고역일 것 같다.
그래서 내 해결책은 일단 처음 일을 맡았을 때 쟁점이라든지 조사 범위를 최대한 명확하게 하고 후속 질문은 최소한으로, 그리고 가상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질문으로 한정하기.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나름 결과물을 만들어서 갖다주고, 지적이 있으면 고치기. 정말로 방향 자체가 헷갈린다 싶으면 기한보다 좀 일찍 초안을 배달해서 지적대로 기한 내에 다시 해서 가져오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결과물을 내기보다는 자꾸 재면서 질문을 던지는 건 잘못해서 지적받는 걸 두려워하는 마음이 깔린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실수하고 혼나는 건 누구든 싫거든. 하지만, 상사를 편하게 해주고 자기 판단으로 일 처리를 하는, 즉 '일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생각의 중심은 '실수하지 않는 것, 지적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하고 지적받더라도 일단 결과를 내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건 정말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제대로 질문도 안 하고서 상사가 지적할 시간도 없이 홱 내버리고 나 몰라라 하라는 얘기 따위는 당연히 아님. (...)
5. 일은 직장에서 한다
마지막으로 이건 그냥 개인적인 원칙에 가까운데, 난 일단 퇴근하면 일을 안 하는 걸 원칙으로 했다. 직장에서만 일하고 그걸로 끝. 물론 여기에는 개인적 사정이 많이 작용했다. 돈도 안 받는 단기 인턴십이니까 미친 듯 불철주야 일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또 내 건강을 생각해서 그런 것도 있었고. 하지만, 대체로 일은 직장에서 하는 건 좋은 원칙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되도록 지키고 싶은 부분이다.
그 이유라면 우선 일할 수 있는 시간제한이 있는 편이 효율이 좋다. '6시까지 오늘분 못 마치면 집에 가져가서 마저 하지 뭐'하고 '6시까지 오늘분을 못하면 내일로 넘어가고, 기한 지키는 데 지장이 생겨!' 하는 마음가짐은 일단 집중도가 다르니까. 이번 인턴십 하면서 비교적 단기간에 많은 일을 했던 것은 내가 일을 한 시간이 길어서가 아니라 집중해서 열심히 해서였다고 생각한다.
또 일을 직장 외의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확장하면 생활에 절도가 없어진다. 일하는 시간, 운동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가족과 보내는 시간, 친구 만나는 시간... 삶에는 일 외에도 수많은 영역이 있는데, 집에서 일을 하는 식으로 그 경계를 허물기 시작하면 결국 어느 한 가지에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건강이나 인간관계에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닐 듯.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겼다가 느슨하게 풀었다가 하면 탄성을 유지하지만, 끝없이 팽팽하게 당기면 결국 탄력을 잃거나 끊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건 정말 개인차이일 수 있지만,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일은 정해진 시간 혹은 공간에서, 하는 동안 집중해서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뭐 짧은 기간이나마 일하다 보니 대체로 이런 것들을 느끼게 되더라... 하는 정도 얘기다. 앞으로 사회 경험이 더 쌓이면서 이 글이 어떻게 보일지, 어떤 걸 추가하거나 빼게 될지도 궁금하고.
2007/08/07 16:07
2007/08/0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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