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Avatar)를 3D, 아니 의자까지 흔들어 주시고 얼굴에 물뿌려주는 4D로 봤다. 어차피 영화관 외에는 절대 볼 생각이 없으니 아침부터 속이 안 좋은 날이기는 했지만 부득불 가서 봤다. 아마 요즘 아바타 보기 어려운 게 다른 사람들도 나랑 비슷한 생각이라 그런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후회하지는 않는다. 영상은 정말 수준급이었고, 실사와 애니메이션 입힌 실사가 기존의 컴퓨터 그래픽이나 외계인 의상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외계인의 생김새는 워낙 실감나고 움직임은 너무나 부드러워서 아바타의 기술적, 시각적 완성도에 대한 찬사는 정말 이해할 만했다.
소재나 상황 역시 생각을 많이 하게 했다. 자원과 수익을 위해 원주민을 삶의 터전에서 몰아내는 제국주의와 이윤 우선주의는 실제 역사에서도 질리도록 본 내용 아닌가. 외계인 나'비의 문화나 복장, 행동양식은 우리 세계의 미국 원주민을 방불케 하는 점이 많았고, 영화 중 대령이 원주민을 가리켜 쓴 hostile이라는 표현은 서부개척이 한창일 때 미대륙 원주민을 미군에서 흔히 칭하는 말이었다. 또 홈트리를 불태우는 장면에서는 고향에서 쫓겨나는미국 인디언 외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 집을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이스라엘의 행태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듣던 대로 이 흥미로운 소재와 최고급의 영상을 끌어가는 대본은 영 신통치가 못했다. 우선 가장 약한 부분은 인물의 변화이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열심히 나'비의 사냥 기술이나 정신세계를 배우는 장면은 나오지만, 정작 그가 나'비의 편을 들게 된 계기랄까, 전환점은 없어서 감동적이라기보다는 쟤가 왜 저러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나'비 편으로 전향한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레이스 정도를 빼고는 인물이 그렇게 할 만한 개연성은 별로 안 보였다. 결국 플롯의 필요에 따라 실을 당기면 움직이는 꼭두각시 같은 생동감 없는 등장인물은 영화에 대한 감정적 몰입을 어렵게 했다.
그나마 설리가 나'비를 선택할 만한 가장 개연성 있는 이유는 불행히도 전혀 긍정적이지 않은 것들이다. 그의 도덕적, 정신적 변화를 모르겠다 보니 그나마 공감이 가는 건 첫 번째, 아바타와 접속한 상태에서는 원래 몸과는 달리 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두 번째, 이미 약혼자가 있는 네이티리를 갖고 싶었다는 것. 어느 쪽이든 이해는 가지만 설리를 썩 좋게 생각하기는 어려운 동기이다.
대본이 또 약한 부분이라면 스토리의 개연성이다. 설리가 순전히 에이와 여신의 선택을 받아 목숨을 건지고 나'비 부족에서 받아주었다는 것도 꽤나 편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지만, 이후 인간들과 맞서싸우는 진행을 보면 이야기와 결말 자체가 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의존하는 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업 군인 출신이라는 설정이 무색할 정도로 형편없는 전술적 판단으로 설리가 그 많은 전사를 죽여먹자, 에이와가 이 무능한 놈을 선택한 게 뒤늦게 미안했는지 원군을 보내줘서 살았다는 게 이야기의 전부 아닌가.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에이와가 한 일인데 저 많은 인물이 뭐하러 필요했는지, 이야기 자체에 회의를 느끼며 끝난 결말이었다.

에이와, 어째서? (..)
인물과 이야기의 개연성과 완성도 부족이라는 가장 치명적인 결함 외에도 문제는 너무나 많았다. 일단 위에서도 언급했듯 나'비의 문화나 상황 등은 아주 의도적으로 미국 원주민에게서 따왔다. 그래서 도저히 깊이나 뉘앙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유치한 신비주의 일색의 나'비 문명은 인종차별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우주에서의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지만 늑대와 함께 춤에서조차 원주민 문화를 저렇게까지 평면적으로 폄하하지는 않았다. 거친 자연환경에 고도로 적응한 세련된 문명의 모습이 엿보이는 나'비가 대지와 여신밖에 모르는 순진한 컬트집단으로 나온 것은 꽤 실망스러웠다.
인종차별 하니, 왜 위기에 처한 원주민은 꼭 백인의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발상도 참 유치찬란하고 단순무식해서 짜증이 났다. 또 너무나 포카혼타스를 방불케 하는 상대역 네이티리의 전형성이라든지, 그 똑똑하고 유능한 여자가 점점 주인공 들러리로 전락한 고색창연한 남성중심 판타지, 다른 남자하고 정혼이 되어 있다가 외부인하고 연을 맺은 그녀의 행동이 잠깐 문제가 됐다가 '드래곤 라이더니까 괜찮아' 하고 모든 것이 무마된 어찌보면 적나라한 성공지상주의 등 스토리는 마음에 드는 게 거의 없었다.
아바타의 영상이나 기술은 분명 훌륭하지만, 영화의 기술은 좋은 이야기를 전할 때 가장 빛난다. 기술이란 도구이며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바타는 기술적으로 높이 쳐줄 수 있지만 이야기로서의, 따라서 영화로서의 실패는 그 훌륭한 영상 때문에 오히려 더 두드러졌다.
아바타의 가장 긍정적인 영향은 영상기술의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바타의 상업적 성공은 기술개발과 투자심리를 촉진할 것이며, 그 결과 더 많은 3D 영화가 쏟아져나올 것이다. 많이 나오다 보면 그 중에는 명작도 있을 것이다. 아바타가 보여준 기술이 앞으로는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기술에 현혹되어 진짜 재밌는 영화가 무엇인지 잊지 않는다면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