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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articles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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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1/06 동성애에 대한 나의 취향? (8)
  3. 2009/11/30 성형수술과 신데렐라의 두 언니, 루저 파동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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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9/08/17 Ma Bete Noire. (4)


당신의 조건

2010/01/22 22:48  로키 TAG , ,
사람에 따라서는 내가 조건을 안 보고 남자를 사귄다고 할지도 몰라.

내가? 조건을 안 봐? 푸하하하.

조건을 떠나서 사람을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인 게 당연하잖아.

물론 같은 환경에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지만,

그리고 환경'만'의 산물은 아무도 없지만,

환경과 타고난 특징, 그리고 선택은 모든 영혼의 삼위일체, 알파이자 오메가지.

(신성모독 지송... 회개할 테니 살려주세요 하느님..ㅠㅠ)

난 조건을 안 보고 무조건 당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당신 조건이 너무 좋으니까 선택한 거야. 조건, 너무나 중요하니까.

우선 가정. 사람이 되어가는 어린시절에 당신을 만든 부모님을 안 볼 수 없지?

솔직히 말하면 당신한테 반하기 전에 당신 어머님께 반한 것 같아.

당신은 강인하고 진취적이신, 정말이지 존경스러운 여성을 보며 자라났지.

그런 분이 어린 당신의 세계였고, 우주였으며, 오늘까지 여성의 원형인 거야.

(마마보이라고 하는 거 아님ㅡㅡ; 모든 어머니는 아이에게 그런 존재니까.)

그런 당신은 여성을 존중하는 법, 여성에게 귀기울이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웠지.

그거 의외로 그렇게 흔한 기술이 아니거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변명 없이 삶을 온전히 책임지시는 그분의 자세 역시 당신은 어려서부터 배워왔어.

그래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성실하고 꾸준하고, 또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의 방향을, 원하는 삶의 모습을 끝없이 고민하고 생각하지.

삶에 대한 고민 없이 남들의 기대대로 사는 것은 겉보기에는 성공한 삶이지만

사실은 자기 삶에 대한 최악의 직무유기라고 나는 생각해.

당신은 그렇지 않지. 지속적으로, 치열하게 생각하고 계획하고

자신의 열정을, 영혼의 모습을 좇으며 살려는 노력과 고통을 피하지 않아.

그런 책임감은 물론 당신의 선택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선택은 당신이 처한 환경 앞에서 한 것이기도 했지. 모든 선택이 그러니까.

그리고 당신의 가족환경은 당신에게 치열하고 자발적인 삶의 자세를 가르쳤어.

그러니 어떻게 멋진 조건이 아닐 수가 있어?

또 당신의 좋은 조건이라면 어려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

삶이 얼마나 어려울 수 있는지 아는 당신의 계획과 고민들은

실패의 결과와 가능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 또 자유로워서도 안 되고.

그래서 당신이 도모하는 것들, 당신이 하려는 시도들은

현실과 유리된 공상이 아닌, 현실의 어려움과 어둠을 직시한 도전이야.

그리고 그 어려운 시간을 빠져나오면서 시련을 극복하는 법,

자기 삶을 책임지는 자세를 지켜보고 배울 수 있었지.

시련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고생을 무릅쓰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아는 조건을 갖춘 남자인데, 탐나지 않을 수 있겠어?

누구든지 말로는 아는 것이지만 이론적인 지식과 체득한 지혜는 비교할 수 없지.

마지막으로 좋은 조건은 당신이 심각하게 회의를 느낄 만한 직장에 다닌다는 거야.

이론과 경험은 다른 법이지. 열정과 유리된 삶이 나쁘다는 건 다들 알지만

그러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잿빛 삶을 살지.

당신은 그런 삶의 모순을 직접 겪으면서 자기다운 삶에 대한 욕망에 박차를 가했고,

열정을 쫓으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지금을 기억하며 더욱 힘을 낼 거야.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기 쉽다는 것을 체득하고

자신의 내면에 귀기울이고, 자기다운 삶의 청사진을 열심히 그리게 된 것이

지금 겪는 힘겨운 시간의 선물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돈 많이 버는 것도, 유명한 것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도 아냐.

자기 영혼의 모양에, 내면의 부름에 맞는 재밌고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 것,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독립적으로 당당하게 사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야.

당신은 그런 당신다운 성공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었어.

그건 부모님 시키는 대로, 돈 벌리는 대로, 남들 부러워하는 대로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책임을 유기하고 겉모습에만 목숨 걸고 사는

그런 소위 엘리트 남자들은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자산이지.

(물론 엘리트도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 편견은 나쁜 거니까.)

그러니 내가 당신 조건을 안 봤을 리가 없지. 조건 안 보는 게 말이 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본다는 게 헛말이 아니지.

당신의 떡잎이, 당신의 뿌리가, 당신이 자라난 토양이...

당신 조건이 좋으니까 오, 눈뜨고 봐줄 만한 남자로군 하는 거야.

조건이 좋다면 이제 남은 건 삶 앞에서 하는 당신의 선택이겠지.

그리고 당신은 좋은 선택을 할 거라고 믿어의심치 않아.

사람이 늘 그렇듯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하겠지만

실패에서 배우고 더욱 성장할 테니까.

어제도 얘기했지만 불안은 결국 자신에 대한 불신이지.

내가 고생을 할 수 있을까,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너무 당연한 불안이고 나도 많이 느끼지만, 당신은 잘 극복할 거라고 믿어.

조건 좋은 남자, 이 깐깐한 내가 콱 찍은 남자니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당신도 자신을 소중히 생각했으면 좋겠어.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만큼 자신에 대해 당당했으면 좋겠고.

자신의, 삶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잿빛 날들을 보낼 수 있다면

꿈꾸던 삶은 눈앞에 펼쳐질 테니까. 그 길이 거칠고 지친다 하더라도...

(그리고 사실 그렇게 거칠 것도 없어! 가족이랑 돈 멀쩡하게 있는데 뭐..ㅋㅋ)

같이 늘 얘기하고 보듬으며 꾸준히 걸어가자. 그러다 보면 될 거야.

당신은 그럴 만한 조건을 갖췄으니까. 충분히.
2010/01/22 22:48 2010/01/22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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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hovamp
    2010/01/24 11:00 PERMALINK EDIT/ERASE REPLY

    공개 염장질!
    (라고 써놓으면 꼭 제가 솔로같아 보이는 효과가 있군요)

    • 로키
      2010/01/24 16:25 PERMALINK EDIT/ERASE

      이제 나는 커플도 염장하는 경지에 (??)

  2. 무스카
    2010/01/24 11:26 PERMALINK EDIT/ERASE REPLY

    우와아앙 부럽긔

  3. 2010/01/25 12:25 PERMALINK EDIT/ERASE REPLY

    우쭐우쭐

  4. 삭풍
    2010/01/26 16:08 PERMALINK EDIT/ERASE REPLY

    윽 인사드리러 왔다 주화입마에...[OTL]

    • 로키
      2010/01/27 16:13 PERMALINK EDIT/ERASE

      아 전역하셨다고 얘기 들었어요! 주화입마는 어서 치료를..;ㅁ;

  5. 2010/01/26 21:41 PERMALINK EDIT/ERASE REPLY

    조용히 보고 넘어갔지만, 역시 부럽부럽.. ^^;
    @ 저도 올해는 솔로 탈출 좀 ㅋㅋ

  6. 아사히라
    2010/02/01 00:21 PERMALINK EDIT/ERASE REPLY

    ㅠㅠ...

    • 로키
      2010/02/01 12:19 PERMALINK EDIT/ERASE

      (토닥토닥) 아군도 짝을 만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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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한 나의 취향?

2010/01/06 19:55  로키 TAG , ,
다른 글에 쓰고 있다가 별 상관없는 얘기인 것 같아서 별문으로 뺐다.

동성애와 취향 얘기가 나온 김에 동성애에 대한 내 '취향'을 묻는다면, 나는 일단 무슨 목적의 취향이느냐고 묻겠다.

내가 동성애를 할 의향이 있느냐는 의미냐면, 현재 이성과 사귀고 있으며 바람을 피울 생각은 없다. 그런 면에서는 취향이 아니겠지.

(남친이 성전환수술을 해도 계속 연인일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 그에게는 성전환수술이 필요없으므로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지면을 빌어 전한다.)

다른 사람이 동성애를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라면, 그건 남의 이성애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만큼이나 묘한 질문이다.

옆집에서 (혹은 옆 도시에서, 혹은 지구 반대편에서) 이성이든 동성이든 혼자든 여럿이든 자기들끼리 뭘 하든 내 취향과는 무관한 게 뻔하잖아.

아니, 오히려 별로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남의 성생활에 대해 왜 취향이 존재하는 걸까, 그게 더 궁금하다.

동성애자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하는 의미의 취향이라면 당연히 친구가 될 수 있다.

아는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알아서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이전에는 못했던 연애 고민 얘기도 듣고 했으니까.

BL물이나 야오이에 대한 취향이라면,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냥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어차피 그건 동성애에 대한 취향이 아니라 매체에 대한 취향 아닌가.

이렇게 여러모로 '남의' 동성애에 대한 취향이라는 건 참 성립하기 어렵다.

그냥 각자 자기 생활이나 잘 챙기면 안 될까. 관음증이 아닌 이상 남의 성생활에 대한 취미라는 건 그 자체가 모순 아냐?
2010/01/06 19:55 2010/01/0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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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hovamp
    2010/01/07 09:21 PERMALINK EDIT/ERASE REPLY

    맨 마지막 문장이 특히 명쾌하군요 ㅋㅋ. 대체로 저와 입장이 비슷하신데, 맨 마지막 내용은 한 차례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가 글을 읽고 "아!"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로키
      2010/01/07 15:41 PERMALINK EDIT/ERASE

      어떻게 보면 사생활에 대한 권위주의는 하나의 집단 관음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물론 뭐 엿보이는 쪽과 합의만 있다면 관음증도 나름 훌륭한 성적 취미이지만..ㅋㅋ 그런 합의가 없다는 게 문제겠지.

  2. 2010/01/12 22:45 PERMALINK EDIT/ERASE REPLY

    저는 다소 보수적인(ㅎ) 크리스천 입장에서, 동성애를 수긍하진 않아요.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동성애자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지금은 연락이 잘 안되지만), 아무튼 저는 내심 좀 안타까워하고 있죠. 그냥 여자친구도 사귀어보라고만 얘기합니다. 헤헤.

    @ 저, 이번 주말에 워싱톤 DC 놀러갈 듯!! 누나 학교 주변이나 가볼만한 곳 좀 알려주세요~^^

    • 로키
      2010/01/14 20:41 PERMALINK EDIT/ERASE

      뭐 그 부분도 그렇고 그양반 말씀 중에는 내가 수긍 못하는 게 많아서 지옥에 자리를 예비해 놓지 않았겠삼..ㅋㅋ

      DC에 놀러가는구나!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나 의사당 앞에 Reflecting Pool 주변이 관광객 많이 가는 데지. 박물관 중에는 특히 Native American 박물관이랑 현대미술관을 강추함. 차이나타운에 괜찮은 식당도 많고.. 고급 레스토랑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주 가던 Chinatown Express가 싸면서 맛있었지. 바로 집 근처기도 했고..

  3. orches
    2010/01/15 21:10 PERMALINK EDIT/ERASE REPLY

    동성애라.. 전반적으로 로키님 생각과 비슷한 것 같아요. 끔찍하다거나 죽어야 된다던지 그런 생각은 들지 않구요. 사람마다 다양한 취향과 가치관이 있을거고, 그들 역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

  4. 고냥마님
    2010/02/08 16:57 PERMALINK EDIT/ERASE REPLY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하였으니 동성애자도 하느님이 창조한거 -_-
    옛날 생식과 번식이 무엇보다 중요했던때는 번식이 안되는 동성애가 죄악처럼 생각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도 구약에 근거해서 동성애를 죄악시 하는건 힌두교에서 흰소 모시는거보다 더 합리성이 없는 이야기
    ....라고 성경학교다닐때 이야기했다가 마귀취급당한경력있음 ㅋㅋㅋ

    • 로키
      2010/02/08 21:19 PERMALINK EDIT/ERASE

      이 마귀!! ㅋㅋ 나도 이해가 안 가는 게, 과학적 증거로 보면 동성애는 유전적 형질인 것 같다는 말이지. 그럼 하느님이 그렇게 만들고는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정죄하는 건 내 인간적 머리로는 아스트랄한 일이야. 다운증후군이 있거나 피부가 검거나 눈이 파란 것이 죄라고 할 수 없듯이...아니, 혹시 죄라고 하면 죄인가?!

      하긴 뭐, 진화론만 봐도 종교가 과학이나 사회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건 하루이틀이 아니지. 무조건 옛날 가치관이 좋다는 종교의 보수성이 난 참 싫더라고. 그러니 같은 마귀끼리 잘 지내보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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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과 신데렐라의 두 언니, 루저 파동

2009/11/30 20:09  로키 TAG ,
모 TV쇼에서 벌어진 루저 발언 파동은 수많은 말과 패러디, 글을 부르면서 이제는 특별히 뭔가 덧붙일 것도 없는 대한민국 방송사의 일부분이 되었다. 정신나간 발언이었고 모욕적인 폭언이었고, 우리 사회 일부에 물든 천박한 허영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 등등, 다 옳은 말이다.

워낙 상식없는 짓을 했으니 그 말을 한 여학생을, 그리고 그딴 식으로 방향을 유도했거나 대본을 썼을 수도 있는 (그리고 녹화방송인데 편집도 하지 않은) 제작진을 성토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저거 나쁜년이고, 제작진들은 정신이 나갔다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들만이 문제일까? 우리 건전한 한국사회에서 그런 일부 '정신나간' 사람들을 성토하고 매도하면 루저 발언의 정신적, 언어적 폭력이 없어질까?

한국 사회가 얼마나 획일적이고 계층적인지는 길게 얘기해봐야 입만 (혹은 손만) 아프다. 모두가 똑같은 기준을 강요받고 그 기준을 따라가려고 헐레벌떡 따라가는 사회다. 돈이면 돈, 외모면 외모, 키면 키 다 어떤 이상적인 잣대가 있고, 그 기준은 곧 좋으이며 옳음이며 선이다. 서울은 지방보다 위고, 키가 크면 작은 사람보다 우월하고, 대졸은 고졸보다 낫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능가하고, 전문직과 공무원이 최고고, 예뻐야 눈이 간다. (그 미의 기준도 엄청나게 천편일률적이다.) 그 기준에 미치는 사람은 인생의 승리자다. 못 미치면? 루저~

TV에 어쩌다 나온 어린 여자아이의 말 한 마디에 한 나라가 발칵 뒤집힐 이유가 사실 얼마나 되는가. 이도경양보다 훨씬 오래 살고 많은 경험을 하고, 비교도 안 되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발언에도 우리는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분이 상한 것은 홍대 다니는 한 여학생이 그들을 루저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자신이 루저라는 믿음, 혹은 두려움을 그녀가 자극했기 때문이다. 키를 포함한 그 단일하고 이상적인 사회적 기준에 못미치는 자신은 패배자가 아닐까 하는 불안은 우리 모두에게 계속 잠재해 있고, 이번 루저 소동은 그 불안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였다.

하나의 외부적 기준에만 자신과 삶을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은 교육, 취업, 의료(?)  분야에서 잘 관찰할 수 있다. 타고난 개성과 매력과 무관하게 자신을 어떤 이상에 맞추려는 그 끝없는 노력의 경주 속에서. 그래서 우리들은 무조건 대학에 가려고 기를 쓰고, 공무원이나 전문직, 그도 아니면 대기업 직원의 감투를 쓰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그리고 역시 타고난 모습과 상관없이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얼굴을 뜯어고치고 다이어트를 한다. 경험도, 살아가는 모습도, 심지어 생긴 것도 모두 비슷비슷해지려는 사회적 몸부림은 눈물겹도록 치열하다. 그렇지 않으면 뒤처지니까, 패배자가 되니까.

그래서 나는 (그녀의 발언에 직접 해당사항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이도경이라는 여학생이 불쌍하다. 그녀는 4천만 국민이 모두 쌍둥이가 되기를 꿈꾸는 국가적 대사업의 처연한 얼굴이다. 남의 시선을 강박적으로 의식하고 외적 잣대에 자신을 맞추는 데에 삶을 바치는 와중에 그녀에게는,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인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의 마음, 자신의 행복은 모두 쓰잘데기없는 패배자적 생각일 뿐일 테니까.

삶의 선택에 자신이 없이 남의 시선이 있을 뿐인 홍대 아가씨는 그래서 딱하다. 그녀의 중심이 외적 잣대가 아닌 자신이었다면 도경양은 경쟁력이니 루저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키큰 남자를 좋아한다고, 키작은 남자와도 사귈 수 있지만 키큰 남자가 취향이라고 아무도 업신여기거나 모욕하지 않고 당당히 말했을 테니까. 자신의 취향이 아닌 맞춰야만 하는 외적 잣대가 삶의 기준이 될 때 그것은 다원성이 아닌 폭력이 된다. '나는 ~~를 좋아해'가 아닌 '너는 ~~하지 않으므로 가치가 없어'가 된다. 그래서 획일화는, 그리고 획일화를 향한 강박의 이면은 사회적 폭력이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전에는 어린아이들에게 흔히 읽히는 판본에 빠진 대목이 있다. 무도회에 구두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그녀를 찾으러 왕자가 그녀의 구두를 전국 각지로 보내 여자들에게 신어보게 했을 때, 신데렐라의 못된 두 의붓언니는 왕자비가 되는 실마리인 그 구두에 발을 맞추려고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자르고 발을 우겨넣었다. 신분상승과 성공이라는 지상과제 앞에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발 모양이나 크기, 심지어 발의 온전함이나 고통에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 신발에, 그 잣대에 자신을 맞추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 모습이 오늘날의 성형수술 열풍과 겹치며 오싹했던 사람이 나뿐일까.

외적 잣대가, 타인의 시선이 자신을 압도하는 순간 멀쩡한 발뒤꿈치와 발가락을 잘라내서라도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일은 너무 당연하게 되어버린다. 자신의 취향, 재능, 꿈, 개성, 건강 같은 별거 아닌 것들을 잘라내고 도려내서 마침내 신데렐라의 신발에 발을 우겨넣을 수 있게 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한, 자신을 잘라낸 고통은 승리의 별거아닌 대가일 뿐일 테니까. 그때에야 자신을 좀먹는 모든 공허와 불안과 너는 패배자라고 속삭이는 목소리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내가 너무 구식이고 고리타분한 것일까? 나는 행복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자신을 개조하려고 해도 결국 외적 기준은 외적 기준일 뿐이고, 자신의 내적 기준은 또 다른 얘기다. 화려함은 외적 기준에 맞추는 데서 나올지 몰라도 행복은 자신의 기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외적으로 결혼, 직장, 외모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들이 실은 공허와 불행에 시달리기도 하는 것을 따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자신이 빠진 행복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진짜 패배자는 키가 180이 안 되는 남자들이 아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키큰 남자들한텐 매력을 못 느낀다.) 자기 기준 없이 외적 잣대에,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며 그 획일적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 그 불쌍한 사람들이 진짜 루저다. 타인의 시선에서 행복을 찾는 이상 행복할 수도 없고, 뿐만 아니라 남까지 불행하게 하려는 것이 그들이니까. 남의 신발에 맞추려고 자기 발을 잘라내는 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짓, 딱한 루저짓이 또 있을까.
2009/11/30 20:09 2009/11/3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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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hovamp
    2009/12/01 22:13 PERMALINK EDIT/ERASE REPLY

    이번 루저 파동은 여러가지로 재미있었지요.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걸 가지고 마초이즘을 끌어내는 칼럼이었는데 말입니다. [...] 외모 관련 비하가 정신적 쇼크를 준다고 해서 고소한다면 여자들은 이미 수백번도 더 고소를 했어야 했다던가, 사회 기득권층인 남자의 80% 정도를 루저로 씹었기 때문에 이렇게 까인 거라던가 하는.

    집단주의는 그래서 무서워요. 말씀대로 기준이 내가 아닌 남에 있기 때문에 그 기준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라는 틀을 만들고 자신을 끼워넣고 그 틀 밖에 있는 사람은 모조리 적이 되는. 그래서 유독 우리 사회는 편가르기가 성행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2. lhovamp
    2009/12/01 22:16 PERMALINK EDIT/ERASE REPLY

    너무 복잡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으나, 수백년간 예의와 "염치" 라는 것을 강조해온 민족이라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문화적인 뿌리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 로키
      2009/12/03 11:15 PERMALINK EDIT/ERASE

      확실히 우리나라는 그런 집단주의적 전통이 강하지. 어찌보면 개인의 소신과 도덕보다는 집단 (특히 집단의 지도자들)에 따르는 게 더 미덕이었을까. 집단주의는 자신의 양심이나 도덕을 집단에 맡길 수 있는 게 정말 무섭지. 집단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정당화할 수 있으니...

  3. 2009/12/02 18:00 PERMALINK EDIT/ERASE REPLY

    저는 늦게 이 프로를 봤더랬죠.
    사실 저 발언 자체보다는 그 이후까지 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정말 뭘 듣고 자라면 저런식의 가치관을 갖게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기 스스로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가능성을 두지 않고 타인과 여러가지 다른 타자에 의존하는 생각들이 적나라하게 표현되더군요.

    • 로키
      2009/12/03 11:17 PERMALINK EDIT/ERASE

      참 문제죠... 자신이라는 게 없어지고, 남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만 남는다는 것. 부모가 그렇게 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가치관을 형성하게 키우는 게 아니라 남 눈치보고 남보다 앞서게만 가르쳤으니 그렇지 않을까요.

  4. 2009/12/03 22:10 PERMALINK EDIT/ERASE REPLY

    정말 잘 읽었습니다. 어렴풋하게 느끼곤 있었는데, 예리하게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주셨네요. 단순히 한 사람이나 방송사 책임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미국에 와서 살아보니까, 여긴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의 시선, 평가가 덜 일괄적이라는 점은 나은 것 같아요. 잣대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처럼 모두가 한 가지 잣대를 갖는 수준은 아니니...

    한편 요즘 케이블에서 유행하는 [남녀 탐구생활]을 보면서도, 너무 남성성/여성성을 단편적인 측면으로 몰아가는 듯 해서 좀 씁쓸했습니다. (정말 여자들이 다들 그런 건가요? oTL.)

  5. 2009/12/03 22:13 PERMALINK EDIT/ERASE REPLY

    마침 오늘 알라딘에서 온 책 소개 메일에서 올리버 제임스의 [어플루엔자 Affluenza]를 접한 참이라, 더욱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되네요..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525710

    • 로키
      2009/12/04 19:28 PERMALINK EDIT/ERASE

      어느 사회든 외적 잣대는 있지만, 우리나라는 유달리 획일성이 심한 것 같아. 그건 어떻게 보면 각종 차별 문제하고도 상관이 있고. 남자도, 여자도 다 각양각색인데 모두 한 가지 틀로 보려는 경향이 있으니까... 희화하는 의도로 활용하면 차라리 낫지만, 문제는 웃음거리만은 아니라는 것. 물론 차별은 어디에나 있는 문제인 만큼 결국 인간 자체의 특징일지도 모르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플루엔자 재밌어 보이네. 학교 도서관에 있으니 심심할 때 빌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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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2009/11/04 12:32  로키 TAG
1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즉 애매한 기간인가!) 평범하고 평탄한 연애를 별다른 싸움이나 갈등도 없이 이어온 시간은 둘 사이에 편안한 친밀감으로 쌓여있다. 서로 원하는 것이 비슷하고 원만한 성격도 비슷하니 어찌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또 1년, 2년이 흐르면 우리 모습이 또 어떨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미래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기대와 불안의 불안정한 혼합이지만, 지난 1년의 좋은 추억은 변하지 않는 과거이다. 그 위에 또 무엇을 쌓아가느냐가 그와 나의 몫이겠지.
2009/11/04 12:32 2009/11/0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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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4 21:58 PERMALINK EDIT/ERASE REPLY

    헤헤헤^^ 분명히 좋은 일이 가득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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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타로

2009/10/23 18:35  로키 TAG ,
오랜만에 한 타로는 부드러운 꾸짖음 내지 격려라는 느낌이다.

안정적인 행복과 기쁨 (잔의 열)은 감정과 관계를 꾸준히 키워가는 인내 (잔의 여왕)에서 나오고,

역경에 이기는 내적 힘 (VIII. 힘)은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 (지팡이의 여덟)에서 나오고,

경력과 재산을 만들어가는 추진력은 (동전의 기사) 우연과 미지에 자신을 맡기는 용기 (X. 운명의 바퀴)에서 나오고,

의존이나 독선의 양극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은 (XIV. 절제) 남에게 도움을 부탁할 수 있는 겸손 (지팡이의 열)에서 나온다.

끈기있게, 꾸준히, 그러면서도 어차피 운이 많이 좌우하는 거니까 과감하게, 그리고 혼자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할 것. 내게 꼭 필요한 생각들이다.
2009/10/23 18:35 2009/10/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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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행복행복

2009/10/12 08:21  로키 TAG
어째서일까? 요 며칠 생활이 변하고 있다. 어느 정도 삶이 기틀을 잡아서일까, 몸이 좋아져서일까, 마음에 회복기가 필요했을까, 연애도 하고 취미생활도 즐기는 감정적 안정감이 작용한 것일까, 실제로 쓰는 시간을 추적하기 시작하면서 적절한 긴장감이 생긴 것일까. 이 모든 것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갑작스럽게 며칠 전부터 막 의욕이 솟고 미루는 게 덜해지면서 생활이 즐거워지고 있다. 공부를 하는 시간이 늘면서 불안감도 덜하고 노는 것도 즐거워지고, 밤에는 잠들기가 두렵지 않다. 뭔가 잘못하면 나는 왜 이럴까 덜컥 불안한 게 아니라 다음에는 더 잘해야지 하고 새기게 된다.

기쁨과 행복에 대해 전에 글을 쓴 적도 있지만 실제로 새로운 자극으로부터 느끼는 희열은 도파민, 평온하고 조용한 행복감은 세로토닌이라는 서로 다른 호르몬이 관장한다고 한다.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 이시형 박사 지음) 워싱턴 DC 위에 무지개가 떴던 아침은 온통 기쁨이었다면, 요즘은 기쁨과 행복이 교차하는 날을 지내고 있다. 새로운 걸 배우고 또 생활에 변화를 만들어가는 건 기쁨이고, 그렇게 만들어가는 일상 속에 편안한 건 행복이겠지. 늘 새로워지고 늘 변화할 수 있었으면, 그리고 그 변화의 결과를 즐기며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자친구 문자마따나 오늘은 행복행복행복한 하루다. 기쁜기쁜기쁜 나날과 행복행복행복한 일상이 나의, 그리고 모두의 몫이 되기를.

그래도 안 행복하다고? 새끼고냥이 공격을 받아라냥!! (출처: Jezebel)

자는 새끼고양이

가릉가르릉


2009/10/12 08:21 2009/10/1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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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2 23:03 PERMALINK EDIT/ERASE REPLY

    헤헷. 멋지게 박차고 일어나신 것 축하드려요! 저도 지지난 주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헤매다 지난부부턴 활기차게 잘 살고 있네요.

    쭈욱 날마다 기쁨과 평안이 넘치시길~

    • 로키
      2009/10/13 20:36 PERMALINK EDIT/ERASE

      고마워~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잘 하고 있는지는..ㅋㅋ

  2. 2009/10/13 13:16 PERMALINK EDIT/ERASE REPLY

    와! 승한님 덕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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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것

2009/10/07 14:58  로키 TAG
실패해본 경험, 실패를 견뎌내는 용기가 부족해. 실패하면 그게 바로 나 자체라고 을러대는 짐승의 존재는 그나마 있는 용기도 오그라들게 했다. 이제는 좀 나아지기는 했다. 앞으로는 더 나아지겠지. 더 많이 도전해서 더 많이 실패하고, 그래도 괜찮다고 자신을 안심시키고 싶다.
2009/10/07 14:58 2009/10/0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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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감각

2009/09/23 22:27  로키 TAG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의 하루하루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어떤 목표에 가까워졌다고 느껴야 살아가는 의미를 느낄 텐데.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길은 있는데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고 힘들어. 조금은 어렵고 도전이 되어야겠지만, 이렇게까지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게 정말 내 일 맞을까.
2009/09/23 22:27 2009/09/2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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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hovamp
    2009/09/24 08:33 PERMALINK EDIT/ERASE REPLY

    시련. 실패. 고민이 없이 성공하는 케이스는 없으니까 그렇게 힘들고 고민될수록 성공에 가까워지시는 겁니다!

  2. Xenosia
    2009/09/25 18:09 PERMALINK EDIT/ERASE REPLY

    원래 대기만성입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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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내밀지 않으면.

2009/08/31 22:24  로키 TAG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어.

이메일을 쓰지 않으면, 예약을 하지 않으면, 물어보지 않으면, 전화를 하지 않으면, 신청을 하지 않으면, 문자를 보내지 않으면, 부탁을 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데 누가 뭘 갖다줄 리가 없지. 내게 필요하고 소중한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하니까.

오래 전, 브라이언 올디스 (Brian Aldiss)의 SF 단편인 일종의 예술 (A Kind of Artistry)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야기 자체는 그저 그랬지만 (중학생에게 딱히 재미있을 내용이 아니었을지도), 어느 한 대목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2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 골자는 기억하고 있다. 남들이 자신을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 주인공이 다소 놀라는 얘기였는데, 기억을 더듬자면 대충 이렇다.

그는 자신이 수줍음을 탄다고 생각했지 오만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양자는 통하는 데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자신을 내어주고 타인과 공유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이니까.

저 대목을 읽고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았던 건 역시 자신의 모습이 겹쳐서였겠지. 그리고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발전이 없다니, 하아.

먼저 손 내밀지 않는 것은 남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라 하더라도, 이유가 무엇이든 일종의 오만이다. 적어도 결과는 비슷하다. 교류와 공유의 거부.

두려움... 이 대목에서는 영화 예스맨 (Yes Man) 주인공의 대사가 생각난다. 난 타인에게 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내 상태가 그런 식이다. 아니, 평생 그런 식이다.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성적으로는 알아도 믿지는 못한다. 사람이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만 믿지는 못하듯이.

아직도 난 뭔가 야단맞고 (별로 심한 것도 아니었는데) 유치원 반 앞에서 엉엉 울던 꼬마이고, 아버지의 분노 앞에서 반발심과 자기혐오 사이에 얼어붙은 아이이다. 뭘 하든 내가 하면 잘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늘 끈질기게 따라붙고, 내 생각과 판단, 감정은 다 틀렸다는 확신은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 함께한다.

(그동안 잘해온 것들은 사실 정말로 잘한 게 아니라 운이거나 속임수이거나 애당초 별거 아닌 일이라서야. 실체가 드러나서 실망과 비웃음에 노출당하기 전에 빨리 실패해버리는 게 좋겠지, 하고 속삭인다. 감당하지 못할 데까지 올라가지 말고. 얼마나 멀리 떨어지려고? 결국 미끄러질 테니까. 미끄러질 거야.)

그 목소리가 뿌리박고 자리잡도록 허용한 건 자신이다. 아마도 편안해서겠지. 어려운 것은 아마 할 수 없을 거야 하고 포기할 수 있고 (유행하는 말마따나 '난 아마 안 될 거야'), 실패하면 난 원래 그러니까 하고 치부해버릴 수 있다. 그 속에는 불편한 안주가 있을 뿐, 자신과 대면하고 삶을 연마해가는 용기는 없다.

실제로 할일을 미루는 습관과 낮은 자존감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렇겠지. 하면 잘못할 거라는 두려움 앞에서 누가 선뜻 행동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미루는 자신을 미워하는 악순환을 계속하겠지.

그러니까 난 못해~ 하는 편안하고 지저분한 보금자리는 슬슬 걷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잘 안 되면 왜 안 됐나 생각하고 깨달아서 다시 하면 된다. 잘못하면 깨끗이 인정하고 더 잘 하면 된다. 사람인데 처음부터 다 잘 할 수가 있나. 그러지 못한다고 자신을 몰아붙여선 안 된다. 그건 경험의 아픔에 자신을 닫아버리는 두려움이며, 또 오만이니까.

좀 더 겸손하게, 덜 두려워하며, 좀 더 열심히 살고 싶다. 일을 내고, 좌충우돌 실수하고, 혼도 나고, 그러면서 배우고 싶다. 그러려면 손을 내밀자.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니까.
2009/08/31 22:24 2009/08/3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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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09/01 02:56 PERMALINK EDIT/ERAS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로키
      2009/09/01 15:54 PERMALINK EDIT/ERASE

      와와 반갑습니다~~ 저도 정말 그런 상태에요. 우리 함께 힘내봐요! ㅠㅠ

  2. 2009/09/01 09:24 PERMALINK EDIT/ERASE REPLY

    지른 다음에 생각합시다!

  3. 2009/09/03 04:25 PERMALINK EDIT/ERASE REPLY

    저도 비슷하게 잔뜩 움츠러들어 있을 때가 많아요. ^^; 다같이 극복해나가며 멋지게 살도록 하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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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Bete Noire.

2009/08/17 14:20  로키 TAG
약한 자존감은 어려서부터 나를 사냥해온 사냥꾼, 그림자 속에서 따르다가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덤벼드는 어두운 짐승 (la bête noire)이다. 넌 실패했어/실패하고 있어/실패할 거야! 넌 바보같고 약해! 너에게 가치 같은 건 없어! 하는 날카로운 이빨들로 공격해 오는. 누구든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마주하는 그 짐승과 이제는 좀 더 효과적으로 싸워볼 수 있을까. 무기는 갖춘 것 같아. 남은 건 다시 공격하는 순간을 포착해서 몰아내는 것.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지. 뭐든지 하면서 나아지는 거니까. 세상 일이 다 그렇다. 그래서 하나의 실패, 작은 실수로 넌 이미 틀렸다고 할퀴어대는 그 짐승은 전제부터가 틀린 거다.
2009/08/17 14:20 2009/08/1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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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냥
    2009/08/18 11:43 PERMALINK EDIT/ERASE REPLY

    굶겨 죽여보면 어떨까?

    • 로키
      2009/08/19 10:26 PERMALINK EDIT/ERASE

      관심을 먹고사는 짐승인 것 같으니 무시하면 굶어죽을지도? ㅋㅋ

  2. lhovamp
    2009/08/18 19:19 PERMALINK EDIT/ERASE REPLY

    무기는 그저 둔기가 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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