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는데, 내가 어떤 공부를 하고싶은지 얘기하다 보면 말투라든지 표정이 굉장히 열심인가보다. 타고난 학자라거나 (에헴!),
학문적 관심이 대단히 깊어보인다거나 하는 얘기를 들으니 말이야. 그냥 나한테 흥미로운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는데,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뭔가 열정이 전달되나봐.
공부, 특히 입시공부는 그냥저냥 재밌게 하는 편이었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내가
그동안 학문에 대해 얼마나 나태했는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보이니까 알겠어.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건 다 읽고 싶고, 트위터니
비디오니 팟캐스트니 자꾸 찾아보게 된다. 아쉬운 소리 하는거 참 싫어했는데 이젠 이사람 저사람 다 붙잡고 도와달라고 하고
싶어져.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깊이 원하니까 힘이 나는 거다.
이 새로운 꿈이 날 어디로 휩쓸어갈까, 이제는
불안감 대신 기대감으로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정말로 원하는 것이 생기니까 이제는 미래가 초조하지도 않고, 남이 눈치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지금보다 힘든 날이 많이 있겠지만 그런 날에도 이 열정의 반짝임이 힘이 되기를, 그래서 하루하루 충실하고 행복하기를
나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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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articles found.
- 2010/04/23 반짝반짝?
- 2010/04/20 April 20, passing thoughts
- 2010/04/18 고생을 두려워 말자
- 2010/04/13 못한 게 아니라
- 2010/04/08 I don't have to be
- 2010/04/03 새로운 꿈이 생겼다 (2)
- 2010/01/22 당신의 조건 (12)
- 2010/01/06 동성애에 대한 나의 취향? (8)
- 2009/11/30 성형수술과 신데렐라의 두 언니, 루저 파동 (8)
- 2009/11/04 1년 (2)
April 20, passing thoughts
TAG snippets, 생의경제학, 일기In moments of clarity, whether because the mind perceives without self-deception or because circumstances strip away such defenses, we see past that thin veneer of order and civilization. We see that the universe is fundamentally uncaring of human needs and desires, and its inexorable laws have no plan of or solicitation for our fragile and precarious existence.
In that physical space human beings, like all forms of life, strive for survival and, if possible, prosperity, cooperating with or taking from one another as their different resources, strategies, and interests dictate. This is the foundation on which our everyday lives are conducted, that struggle to carve survival and comfort out of surroundings that care nothing for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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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at physical space human beings, like all forms of life, strive for survival and, if possible, prosperity, cooperating with or taking from one another as their different resources, strategies, and interests dictate. This is the foundation on which our everyday lives are conducted, that struggle to carve survival and comfort out of surroundings that care nothing for us.
고생을 두려워 말자
TAG 경력, 일기생각해보면 나는 편한 데에 너무 길들여진 것 같다.
뭐 편한 것 자체는 좋은데, 문제는 그 틀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면 불안~하다는 거지.
그러다 보니 변화가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도 상당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개척해가고 내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신뢰는 별로 없다.
잘 돼도 노력이 아닌 요행 같아서 내 부족함을 언제 들킬까 늘 불안하다.
하긴 뭐, 변화가 두려운 건 어느 정도 인간 본성이기는 하지.
대개는 불확실한 것을 위해 지금 있는 것을 버리기 힘든 게 인간이니까.
노동의 경쟁이 심한 시대에 어떤 직장이든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방어기제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기도 하다.
고생을 해보았다는 것은 역경 앞에서 자기 생활을 제어해본 적이 있다는 뜻이며,
그만큼 변화의 불확실성 앞에 당당할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
고생할 텐데 난 아마 안 될 거야 못할 거야 하는 자기불신과 불안에 갇히는 대신에
자기 갈 길을 파악하고, 고생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위에 움직인다면
그거야말로 돈 주고 사서라도 마련할 만한 자산인 거다.
사실 하루에 16시간 주7일 힘겨운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고생'을 무슨 고생이라고 하겠는가, 완전 호강이지.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지상에 지옥을 만드는 그 지독한 악순환을 끊는 데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기운이 팍팍 날 것 같다.
시덥잖은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목표 앞에서 이렇게 설레어본 것은 처음인걸.
지금은 이 느낌을 믿고 가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일지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고,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어.
그런 의미에서 지금 가는 길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니까.
많이 알아보고 생각해서 그런 시행착오를 줄이려고 노력해야겠지만,
실수할 땐 실수하더라도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살아가는 내일에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와 희망이 가득하기를 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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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편한 것 자체는 좋은데, 문제는 그 틀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면 불안~하다는 거지.
그러다 보니 변화가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도 상당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개척해가고 내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신뢰는 별로 없다.
잘 돼도 노력이 아닌 요행 같아서 내 부족함을 언제 들킬까 늘 불안하다.
하긴 뭐, 변화가 두려운 건 어느 정도 인간 본성이기는 하지.
대개는 불확실한 것을 위해 지금 있는 것을 버리기 힘든 게 인간이니까.
노동의 경쟁이 심한 시대에 어떤 직장이든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방어기제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기도 하다.
고생을 해보았다는 것은 역경 앞에서 자기 생활을 제어해본 적이 있다는 뜻이며,
그만큼 변화의 불확실성 앞에 당당할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
고생할 텐데 난 아마 안 될 거야 못할 거야 하는 자기불신과 불안에 갇히는 대신에
자기 갈 길을 파악하고, 고생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위에 움직인다면
그거야말로 돈 주고 사서라도 마련할 만한 자산인 거다.
사실 하루에 16시간 주7일 힘겨운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고생'을 무슨 고생이라고 하겠는가, 완전 호강이지.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지상에 지옥을 만드는 그 지독한 악순환을 끊는 데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기운이 팍팍 날 것 같다.
시덥잖은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목표 앞에서 이렇게 설레어본 것은 처음인걸.
지금은 이 느낌을 믿고 가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일지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고,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어.
그런 의미에서 지금 가는 길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니까.
많이 알아보고 생각해서 그런 시행착오를 줄이려고 노력해야겠지만,
실수할 땐 실수하더라도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살아가는 내일에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와 희망이 가득하기를 바라니까.
못한 게 아니라
TAG 일기안한 거다. 못한다고 핑계를 대고 실은 안한 거야. 하기 싫어서, 정말 죽도록 싫어서. 어쩌면 공부같은 거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왜 내가 유학 같은 걸 가서 엄마랑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을 흘려보냈나 하는 회한이 몇 번이나 수면에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걸 지켜보았으니까. 한창 페이퍼 쓸 때 엄마가 아프셨으니까, 내가 다시 그렇게 열심히 작업하면 또 불행이 벌어질 것이라는 (따라서 안함으로써 막아볼 수 있다는) 주술적인 생각이었을까. 그렇게 혼자의 불안에 침잠한 채, 고통을 피하는 당장의 위안을 방해받기 싫어서 도움조차 제대로 청하지 않았다. 몸만 컸지 어른이 아니다, 삶의 불확실성과 부담으로부터 도망치는 어린아이일 뿐.
알게 뭐야? 어차피 꽤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얘기해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대답이나 어색한 침묵이 돌아왔을 뿐인데. 가장 정면으로 마주봐준 사람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이 안타까워했을 뿐이라 말한 걸 곧 후회했다. 자신의 고통에도 마주하기 어려운데 누가 남의 고통까지, 그 복잡하고 유치하고 비합리적인 속내까지 감내하고 싶겠어. 자신의 아픔도 어떻게 할 수 없는데 남의 아픔을 어떡하라고. 그러니까 말하지 않고 적당히 감추는 게, 어색하지 않게 자신에게도 숨기는 게 현명한 거다. 내가 삭히고 내가 해결하는 게 옳은데...
어차피 우주에 의미 같은 건 없다. 염세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인간의 의지나 감정, 소망에 이 세상은 어떤 상관도 하지 않는다. 의미가 있다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뿐이지만, 오늘같은 밤에는 피곤해서 그런 데 기운을 쓰기 싫어. 아침에는 좀 나아질지 모르지만, 어차피 살다가 죽는 거 뭐 그렇게 바둥바둥 살아야 하나. Life's a bitch and then you die (인생은 개같고 그러다 죽는다). 오늘 하루종일 떠오른 말이다. 졸려서 칭얼거리네,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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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뭐야? 어차피 꽤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얘기해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대답이나 어색한 침묵이 돌아왔을 뿐인데. 가장 정면으로 마주봐준 사람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이 안타까워했을 뿐이라 말한 걸 곧 후회했다. 자신의 고통에도 마주하기 어려운데 누가 남의 고통까지, 그 복잡하고 유치하고 비합리적인 속내까지 감내하고 싶겠어. 자신의 아픔도 어떻게 할 수 없는데 남의 아픔을 어떡하라고. 그러니까 말하지 않고 적당히 감추는 게, 어색하지 않게 자신에게도 숨기는 게 현명한 거다. 내가 삭히고 내가 해결하는 게 옳은데...
어차피 우주에 의미 같은 건 없다. 염세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인간의 의지나 감정, 소망에 이 세상은 어떤 상관도 하지 않는다. 의미가 있다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뿐이지만, 오늘같은 밤에는 피곤해서 그런 데 기운을 쓰기 싫어. 아침에는 좀 나아질지 모르지만, 어차피 살다가 죽는 거 뭐 그렇게 바둥바둥 살아야 하나. Life's a bitch and then you die (인생은 개같고 그러다 죽는다). 오늘 하루종일 떠오른 말이다. 졸려서 칭얼거리네, 자야지.
I don't have to be
TAG 경력, 일기나는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즐거우면 된다.
무엇이 진정 즐거운지 찾아서 하면,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루하루가 즐거우면
그게 성공이고, 그게 진짜 대단한 거다.
이제 성공의 족쇄에서 놓여나자.
불안이 아닌 희망의 렌즈로 내일을 보고 싶어.
의무나 명성이 아니라 기쁨을 위해 살았다고,
그래서 삶이 너무나 즐거웠다고 죽을 때 말하고 싶어.
I don't have to be...
Anything.
I will be what I want.
To speak no longer in the language of obligation and fear
But of joy and desire
Is the highest aspiration of life
And the noblest way to live.
I'm scared because freedom is a terrible, frightening thing,
(Thus spake V, and I believe him for he is wise)
And laughing at myself because I know the risk I take is vanishingly small
Compared to the size of my fear.
But laugh at me, do, for I am really a small-minded, sheltered woman
Whose fears outmatch any of her realities,
Petit-bourgeois, navel-gazing in the worst of ways.
Is there a point to all this? Does there have to be?
This is my ow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in my narrow bourgeois way.
Freedom from expectations, freedom from self doubt
And aye, from obligation, that dour, sour-faced death of love.
I'm looking, I'm searching, seeking ultimately myself
Somewhere to belong, something to do, someone to be
I may find it tomorrow, next year, a lifetime later, never;
I may waste my potential, my money, my time, my life--
But I will never regret the search. This I believe.
TOP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즐거우면 된다.
무엇이 진정 즐거운지 찾아서 하면,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루하루가 즐거우면
그게 성공이고, 그게 진짜 대단한 거다.
이제 성공의 족쇄에서 놓여나자.
불안이 아닌 희망의 렌즈로 내일을 보고 싶어.
의무나 명성이 아니라 기쁨을 위해 살았다고,
그래서 삶이 너무나 즐거웠다고 죽을 때 말하고 싶어.
I don't have to be...
Anything.
I will be what I want.
To speak no longer in the language of obligation and fear
But of joy and desire
Is the highest aspiration of life
And the noblest way to live.
I'm scared because freedom is a terrible, frightening thing,
(Thus spake V, and I believe him for he is wise)
And laughing at myself because I know the risk I take is vanishingly small
Compared to the size of my fear.
But laugh at me, do, for I am really a small-minded, sheltered woman
Whose fears outmatch any of her realities,
Petit-bourgeois, navel-gazing in the worst of ways.
Is there a point to all this? Does there have to be?
This is my ow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in my narrow bourgeois way.
Freedom from expectations, freedom from self doubt
And aye, from obligation, that dour, sour-faced death of love.
I'm looking, I'm searching, seeking ultimately myself
Somewhere to belong, something to do, someone to be
I may find it tomorrow, next year, a lifetime later, never;
I may waste my potential, my money, my time, my life--
But I will never regret the search. This I believe.
새로운 꿈이 생겼다
TAG 경력, 일기무엇이 막혀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난 편한 자리에, 지위와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나 스스로 신념이 없는 일을 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행복할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내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새로운 사랑만큼이나 설레는 기대감과 불안이...
잘못 생각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실패할 지도 몰라. 때로는 분명 후회할 거다. 그냥 지금 상황에 대한 도피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건 포기할 수가 없다. 그저 이걸 할 수만 있다면 실패하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아.
잘 될까? 성공할까? 가치는 있는 일일까? 모르지. 세상에 보장받은 게 어딨어?
하지만 정말 많이 원하긴 한다. 지금은 일단 이 느낌을 믿어보고 달리고 싶어.
겁도 나고 불안하더라도 온전히 나답게 내 열정을 쫓고 싶어.
비록 잘못이었다 하더라도, 비록 도피에 열정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인 게 전부였다 하더라도,
그건 내 실패이며, 나의 시행착오이겠지. 따라서 나의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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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편한 자리에, 지위와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나 스스로 신념이 없는 일을 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행복할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내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새로운 사랑만큼이나 설레는 기대감과 불안이...
잘못 생각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실패할 지도 몰라. 때로는 분명 후회할 거다. 그냥 지금 상황에 대한 도피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건 포기할 수가 없다. 그저 이걸 할 수만 있다면 실패하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아.
잘 될까? 성공할까? 가치는 있는 일일까? 모르지. 세상에 보장받은 게 어딨어?
하지만 정말 많이 원하긴 한다. 지금은 일단 이 느낌을 믿어보고 달리고 싶어.
겁도 나고 불안하더라도 온전히 나답게 내 열정을 쫓고 싶어.
비록 잘못이었다 하더라도, 비록 도피에 열정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인 게 전부였다 하더라도,
그건 내 실패이며, 나의 시행착오이겠지. 따라서 나의 삶일 것이다.
당신의 조건
TAG 연애, 일기, 편지사람에 따라서는 내가 조건을 안 보고 남자를 사귄다고 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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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건을 안 봐? 푸하하하.
조건을 떠나서 사람을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인 게 당연하잖아.
물론 같은 환경에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지만,
그리고 환경'만'의 산물은 아무도 없지만,
환경과 타고난 특징, 그리고 선택은 모든 영혼의 삼위일체, 알파이자 오메가지.
(신성모독 지송... 회개할 테니 살려주세요 하느님..ㅠㅠ)
난 조건을 안 보고 무조건 당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당신 조건이 너무 좋으니까 선택한 거야. 조건, 너무나 중요하니까.
우선 가정. 사람이 되어가는 어린시절에 당신을 만든 부모님을 안 볼 수 없지?
솔직히 말하면 당신한테 반하기 전에 당신 어머님께 반한 것 같아.
당신은 강인하고 진취적이신, 정말이지 존경스러운 여성을 보며 자라났지.
그런 분이 어린 당신의 세계였고, 우주였으며, 오늘까지 여성의 원형인 거야.
(마마보이라고 하는 거 아님ㅡㅡ; 모든 어머니는 아이에게 그런 존재니까.)
그런 당신은 여성을 존중하는 법, 여성에게 귀기울이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웠지.
그거 의외로 그렇게 흔한 기술이 아니거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변명 없이 삶을 온전히 책임지시는 그분의 자세 역시 당신은 어려서부터 배워왔어.
그래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성실하고 꾸준하고, 또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의 방향을, 원하는 삶의 모습을 끝없이 고민하고 생각하지.
삶에 대한 고민 없이 남들의 기대대로 사는 것은 겉보기에는 성공한 삶이지만
사실은 자기 삶에 대한 최악의 직무유기라고 나는 생각해.
당신은 그렇지 않지. 지속적으로, 치열하게 생각하고 계획하고
자신의 열정을, 영혼의 모습을 좇으며 살려는 노력과 고통을 피하지 않아.
그런 책임감은 물론 당신의 선택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선택은 당신이 처한 환경 앞에서 한 것이기도 했지. 모든 선택이 그러니까.
그리고 당신의 가족환경은 당신에게 치열하고 자발적인 삶의 자세를 가르쳤어.
그러니 어떻게 멋진 조건이 아닐 수가 있어?
또 당신의 좋은 조건이라면 어려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
삶이 얼마나 어려울 수 있는지 아는 당신의 계획과 고민들은
실패의 결과와 가능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 또 자유로워서도 안 되고.
그래서 당신이 도모하는 것들, 당신이 하려는 시도들은
현실과 유리된 공상이 아닌, 현실의 어려움과 어둠을 직시한 도전이야.
그리고 그 어려운 시간을 빠져나오면서 시련을 극복하는 법,
자기 삶을 책임지는 자세를 지켜보고 배울 수 있었지.
시련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고생을 무릅쓰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아는 조건을 갖춘 남자인데, 탐나지 않을 수 있겠어?
누구든지 말로는 아는 것이지만 이론적인 지식과 체득한 지혜는 비교할 수 없지.
마지막으로 좋은 조건은 당신이 심각하게 회의를 느낄 만한 직장에 다닌다는 거야.
이론과 경험은 다른 법이지. 열정과 유리된 삶이 나쁘다는 건 다들 알지만
그러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잿빛 삶을 살지.
당신은 그런 삶의 모순을 직접 겪으면서 자기다운 삶에 대한 욕망에 박차를 가했고,
열정을 쫓으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지금을 기억하며 더욱 힘을 낼 거야.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기 쉽다는 것을 체득하고
자신의 내면에 귀기울이고, 자기다운 삶의 청사진을 열심히 그리게 된 것이
지금 겪는 힘겨운 시간의 선물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돈 많이 버는 것도, 유명한 것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도 아냐.
자기 영혼의 모양에, 내면의 부름에 맞는 재밌고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 것,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독립적으로 당당하게 사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야.
당신은 그런 당신다운 성공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었어.
그건 부모님 시키는 대로, 돈 벌리는 대로, 남들 부러워하는 대로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책임을 유기하고 겉모습에만 목숨 걸고 사는
그런 소위 엘리트 남자들은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자산이지.
(물론 엘리트도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 편견은 나쁜 거니까.)
그러니 내가 당신 조건을 안 봤을 리가 없지. 조건 안 보는 게 말이 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본다는 게 헛말이 아니지.
당신의 떡잎이, 당신의 뿌리가, 당신이 자라난 토양이...
당신 조건이 좋으니까 오, 눈뜨고 봐줄 만한 남자로군 하는 거야.
조건이 좋다면 이제 남은 건 삶 앞에서 하는 당신의 선택이겠지.
그리고 당신은 좋은 선택을 할 거라고 믿어의심치 않아.
사람이 늘 그렇듯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하겠지만
실패에서 배우고 더욱 성장할 테니까.
어제도 얘기했지만 불안은 결국 자신에 대한 불신이지.
내가 고생을 할 수 있을까,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너무 당연한 불안이고 나도 많이 느끼지만, 당신은 잘 극복할 거라고 믿어.
조건 좋은 남자, 이 깐깐한 내가 콱 찍은 남자니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당신도 자신을 소중히 생각했으면 좋겠어.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만큼 자신에 대해 당당했으면 좋겠고.
자신의, 삶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잿빛 날들을 보낼 수 있다면
꿈꾸던 삶은 눈앞에 펼쳐질 테니까. 그 길이 거칠고 지친다 하더라도...
(그리고 사실 그렇게 거칠 것도 없어! 가족이랑 돈 멀쩡하게 있는데 뭐..ㅋㅋ)
같이 늘 얘기하고 보듬으며 꾸준히 걸어가자. 그러다 보면 될 거야.
당신은 그럴 만한 조건을 갖췄으니까. 충분히.
동성애에 대한 나의 취향?
TAG 동성애, 시사, 일기다른 글에 쓰고 있다가 별 상관없는 얘기인 것 같아서 별문으로 뺐다.
동성애와 취향 얘기가 나온 김에 동성애에 대한 내 '취향'을 묻는다면, 나는 일단 무슨 목적의 취향이느냐고 묻겠다.
내가 동성애를 할 의향이 있느냐는 의미냐면, 현재 이성과 사귀고 있으며 바람을 피울 생각은 없다. 그런 면에서는 취향이 아니겠지.
(남친이 성전환수술을 해도 계속 연인일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 그에게는 성전환수술이 필요없으므로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지면을 빌어 전한다.)
다른 사람이 동성애를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라면, 그건 남의 이성애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만큼이나 묘한 질문이다.
옆집에서 (혹은 옆 도시에서, 혹은 지구 반대편에서) 이성이든 동성이든 혼자든 여럿이든 자기들끼리 뭘 하든 내 취향과는 무관한 게 뻔하잖아.
아니, 오히려 별로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남의 성생활에 대해 왜 취향이 존재하는 걸까, 그게 더 궁금하다.
동성애자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하는 의미의 취향이라면 당연히 친구가 될 수 있다.
아는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알아서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이전에는 못했던 연애 고민 얘기도 듣고 했으니까.
BL물이나 야오이에 대한 취향이라면,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냥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어차피 그건 동성애에 대한 취향이 아니라 매체에 대한 취향 아닌가.
이렇게 여러모로 '남의' 동성애에 대한 취향이라는 건 참 성립하기 어렵다.
그냥 각자 자기 생활이나 잘 챙기면 안 될까. 관음증이 아닌 이상 남의 성생활에 대한 취미라는 건 그 자체가 모순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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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와 취향 얘기가 나온 김에 동성애에 대한 내 '취향'을 묻는다면, 나는 일단 무슨 목적의 취향이느냐고 묻겠다.
내가 동성애를 할 의향이 있느냐는 의미냐면, 현재 이성과 사귀고 있으며 바람을 피울 생각은 없다. 그런 면에서는 취향이 아니겠지.
(남친이 성전환수술을 해도 계속 연인일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 그에게는 성전환수술이 필요없으므로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지면을 빌어 전한다.)
다른 사람이 동성애를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라면, 그건 남의 이성애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만큼이나 묘한 질문이다.
옆집에서 (혹은 옆 도시에서, 혹은 지구 반대편에서) 이성이든 동성이든 혼자든 여럿이든 자기들끼리 뭘 하든 내 취향과는 무관한 게 뻔하잖아.
아니, 오히려 별로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남의 성생활에 대해 왜 취향이 존재하는 걸까, 그게 더 궁금하다.
동성애자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하는 의미의 취향이라면 당연히 친구가 될 수 있다.
아는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알아서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이전에는 못했던 연애 고민 얘기도 듣고 했으니까.
BL물이나 야오이에 대한 취향이라면,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냥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어차피 그건 동성애에 대한 취향이 아니라 매체에 대한 취향 아닌가.
이렇게 여러모로 '남의' 동성애에 대한 취향이라는 건 참 성립하기 어렵다.
그냥 각자 자기 생활이나 잘 챙기면 안 될까. 관음증이 아닌 이상 남의 성생활에 대한 취미라는 건 그 자체가 모순 아냐?
성형수술과 신데렐라의 두 언니, 루저 파동
TAG 시사, 일기모 TV쇼에서 벌어진 루저 발언 파동은 수많은 말과 패러디, 글을 부르면서 이제는 특별히 뭔가 덧붙일 것도 없는 대한민국 방송사의 일부분이 되었다. 정신나간 발언이었고 모욕적인 폭언이었고, 우리 사회 일부에 물든 천박한 허영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 등등, 다 옳은 말이다.
워낙 상식없는 짓을 했으니 그 말을 한 여학생을, 그리고 그딴 식으로 방향을 유도했거나 대본을 썼을 수도 있는 (그리고 녹화방송인데 편집도 하지 않은) 제작진을 성토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저거 나쁜년이고, 제작진들은 정신이 나갔다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들만이 문제일까? 우리 건전한 한국사회에서 그런 일부 '정신나간' 사람들을 성토하고 매도하면 루저 발언의 정신적, 언어적 폭력이 없어질까?
한국 사회가 얼마나 획일적이고 계층적인지는 길게 얘기해봐야 입만 (혹은 손만) 아프다. 모두가 똑같은 기준을 강요받고 그 기준을 따라가려고 헐레벌떡 따라가는 사회다. 돈이면 돈, 외모면 외모, 키면 키 다 어떤 이상적인 잣대가 있고, 그 기준은 곧 좋으이며 옳음이며 선이다. 서울은 지방보다 위고, 키가 크면 작은 사람보다 우월하고, 대졸은 고졸보다 낫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능가하고, 전문직과 공무원이 최고고, 예뻐야 눈이 간다. (그 미의 기준도 엄청나게 천편일률적이다.) 그 기준에 미치는 사람은 인생의 승리자다. 못 미치면? 루저~
TV에 어쩌다 나온 어린 여자아이의 말 한 마디에 한 나라가 발칵 뒤집힐 이유가 사실 얼마나 되는가. 이도경양보다 훨씬 오래 살고 많은 경험을 하고, 비교도 안 되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발언에도 우리는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분이 상한 것은 홍대 다니는 한 여학생이 그들을 루저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자신이 루저라는 믿음, 혹은 두려움을 그녀가 자극했기 때문이다. 키를 포함한 그 단일하고 이상적인 사회적 기준에 못미치는 자신은 패배자가 아닐까 하는 불안은 우리 모두에게 계속 잠재해 있고, 이번 루저 소동은 그 불안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였다.
하나의 외부적 기준에만 자신과 삶을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은 교육, 취업, 의료(?) 분야에서 잘 관찰할 수 있다. 타고난 개성과 매력과 무관하게 자신을 어떤 이상에 맞추려는 그 끝없는 노력의 경주 속에서. 그래서 우리들은 무조건 대학에 가려고 기를 쓰고, 공무원이나 전문직, 그도 아니면 대기업 직원의 감투를 쓰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그리고 역시 타고난 모습과 상관없이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얼굴을 뜯어고치고 다이어트를 한다. 경험도, 살아가는 모습도, 심지어 생긴 것도 모두 비슷비슷해지려는 사회적 몸부림은 눈물겹도록 치열하다. 그렇지 않으면 뒤처지니까, 패배자가 되니까.
그래서 나는 (그녀의 발언에 직접 해당사항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이도경이라는 여학생이 불쌍하다. 그녀는 4천만 국민이 모두 쌍둥이가 되기를 꿈꾸는 국가적 대사업의 처연한 얼굴이다. 남의 시선을 강박적으로 의식하고 외적 잣대에 자신을 맞추는 데에 삶을 바치는 와중에 그녀에게는,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인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의 마음, 자신의 행복은 모두 쓰잘데기없는 패배자적 생각일 뿐일 테니까.
삶의 선택에 자신이 없이 남의 시선이 있을 뿐인 홍대 아가씨는 그래서 딱하다. 그녀의 중심이 외적 잣대가 아닌 자신이었다면 도경양은 경쟁력이니 루저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키큰 남자를 좋아한다고, 키작은 남자와도 사귈 수 있지만 키큰 남자가 취향이라고 아무도 업신여기거나 모욕하지 않고 당당히 말했을 테니까. 자신의 취향이 아닌 맞춰야만 하는 외적 잣대가 삶의 기준이 될 때 그것은 다원성이 아닌 폭력이 된다. '나는 ~~를 좋아해'가 아닌 '너는 ~~하지 않으므로 가치가 없어'가 된다. 그래서 획일화는, 그리고 획일화를 향한 강박의 이면은 사회적 폭력이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전에는 어린아이들에게 흔히 읽히는 판본에 빠진 대목이 있다. 무도회에 구두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그녀를 찾으러 왕자가 그녀의 구두를 전국 각지로 보내 여자들에게 신어보게 했을 때, 신데렐라의 못된 두 의붓언니는 왕자비가 되는 실마리인 그 구두에 발을 맞추려고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자르고 발을 우겨넣었다. 신분상승과 성공이라는 지상과제 앞에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발 모양이나 크기, 심지어 발의 온전함이나 고통에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 신발에, 그 잣대에 자신을 맞추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 모습이 오늘날의 성형수술 열풍과 겹치며 오싹했던 사람이 나뿐일까.
외적 잣대가, 타인의 시선이 자신을 압도하는 순간 멀쩡한 발뒤꿈치와 발가락을 잘라내서라도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일은 너무 당연하게 되어버린다. 자신의 취향, 재능, 꿈, 개성, 건강 같은 별거 아닌 것들을 잘라내고 도려내서 마침내 신데렐라의 신발에 발을 우겨넣을 수 있게 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한, 자신을 잘라낸 고통은 승리의 별거아닌 대가일 뿐일 테니까. 그때에야 자신을 좀먹는 모든 공허와 불안과 너는 패배자라고 속삭이는 목소리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내가 너무 구식이고 고리타분한 것일까? 나는 행복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자신을 개조하려고 해도 결국 외적 기준은 외적 기준일 뿐이고, 자신의 내적 기준은 또 다른 얘기다. 화려함은 외적 기준에 맞추는 데서 나올지 몰라도 행복은 자신의 기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외적으로 결혼, 직장, 외모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들이 실은 공허와 불행에 시달리기도 하는 것을 따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자신이 빠진 행복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진짜 패배자는 키가 180이 안 되는 남자들이 아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키큰 남자들한텐 매력을 못 느낀다.) 자기 기준 없이 외적 잣대에,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며 그 획일적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 그 불쌍한 사람들이 진짜 루저다. 타인의 시선에서 행복을 찾는 이상 행복할 수도 없고, 뿐만 아니라 남까지 불행하게 하려는 것이 그들이니까. 남의 신발에 맞추려고 자기 발을 잘라내는 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짓, 딱한 루저짓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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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상식없는 짓을 했으니 그 말을 한 여학생을, 그리고 그딴 식으로 방향을 유도했거나 대본을 썼을 수도 있는 (그리고 녹화방송인데 편집도 하지 않은) 제작진을 성토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저거 나쁜년이고, 제작진들은 정신이 나갔다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들만이 문제일까? 우리 건전한 한국사회에서 그런 일부 '정신나간' 사람들을 성토하고 매도하면 루저 발언의 정신적, 언어적 폭력이 없어질까?
한국 사회가 얼마나 획일적이고 계층적인지는 길게 얘기해봐야 입만 (혹은 손만) 아프다. 모두가 똑같은 기준을 강요받고 그 기준을 따라가려고 헐레벌떡 따라가는 사회다. 돈이면 돈, 외모면 외모, 키면 키 다 어떤 이상적인 잣대가 있고, 그 기준은 곧 좋으이며 옳음이며 선이다. 서울은 지방보다 위고, 키가 크면 작은 사람보다 우월하고, 대졸은 고졸보다 낫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능가하고, 전문직과 공무원이 최고고, 예뻐야 눈이 간다. (그 미의 기준도 엄청나게 천편일률적이다.) 그 기준에 미치는 사람은 인생의 승리자다. 못 미치면? 루저~
TV에 어쩌다 나온 어린 여자아이의 말 한 마디에 한 나라가 발칵 뒤집힐 이유가 사실 얼마나 되는가. 이도경양보다 훨씬 오래 살고 많은 경험을 하고, 비교도 안 되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발언에도 우리는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분이 상한 것은 홍대 다니는 한 여학생이 그들을 루저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자신이 루저라는 믿음, 혹은 두려움을 그녀가 자극했기 때문이다. 키를 포함한 그 단일하고 이상적인 사회적 기준에 못미치는 자신은 패배자가 아닐까 하는 불안은 우리 모두에게 계속 잠재해 있고, 이번 루저 소동은 그 불안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였다.
하나의 외부적 기준에만 자신과 삶을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은 교육, 취업, 의료(?) 분야에서 잘 관찰할 수 있다. 타고난 개성과 매력과 무관하게 자신을 어떤 이상에 맞추려는 그 끝없는 노력의 경주 속에서. 그래서 우리들은 무조건 대학에 가려고 기를 쓰고, 공무원이나 전문직, 그도 아니면 대기업 직원의 감투를 쓰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그리고 역시 타고난 모습과 상관없이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얼굴을 뜯어고치고 다이어트를 한다. 경험도, 살아가는 모습도, 심지어 생긴 것도 모두 비슷비슷해지려는 사회적 몸부림은 눈물겹도록 치열하다. 그렇지 않으면 뒤처지니까, 패배자가 되니까.
그래서 나는 (그녀의 발언에 직접 해당사항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이도경이라는 여학생이 불쌍하다. 그녀는 4천만 국민이 모두 쌍둥이가 되기를 꿈꾸는 국가적 대사업의 처연한 얼굴이다. 남의 시선을 강박적으로 의식하고 외적 잣대에 자신을 맞추는 데에 삶을 바치는 와중에 그녀에게는,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인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의 마음, 자신의 행복은 모두 쓰잘데기없는 패배자적 생각일 뿐일 테니까.
삶의 선택에 자신이 없이 남의 시선이 있을 뿐인 홍대 아가씨는 그래서 딱하다. 그녀의 중심이 외적 잣대가 아닌 자신이었다면 도경양은 경쟁력이니 루저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키큰 남자를 좋아한다고, 키작은 남자와도 사귈 수 있지만 키큰 남자가 취향이라고 아무도 업신여기거나 모욕하지 않고 당당히 말했을 테니까. 자신의 취향이 아닌 맞춰야만 하는 외적 잣대가 삶의 기준이 될 때 그것은 다원성이 아닌 폭력이 된다. '나는 ~~를 좋아해'가 아닌 '너는 ~~하지 않으므로 가치가 없어'가 된다. 그래서 획일화는, 그리고 획일화를 향한 강박의 이면은 사회적 폭력이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전에는 어린아이들에게 흔히 읽히는 판본에 빠진 대목이 있다. 무도회에 구두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그녀를 찾으러 왕자가 그녀의 구두를 전국 각지로 보내 여자들에게 신어보게 했을 때, 신데렐라의 못된 두 의붓언니는 왕자비가 되는 실마리인 그 구두에 발을 맞추려고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자르고 발을 우겨넣었다. 신분상승과 성공이라는 지상과제 앞에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발 모양이나 크기, 심지어 발의 온전함이나 고통에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 신발에, 그 잣대에 자신을 맞추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 모습이 오늘날의 성형수술 열풍과 겹치며 오싹했던 사람이 나뿐일까.
외적 잣대가, 타인의 시선이 자신을 압도하는 순간 멀쩡한 발뒤꿈치와 발가락을 잘라내서라도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일은 너무 당연하게 되어버린다. 자신의 취향, 재능, 꿈, 개성, 건강 같은 별거 아닌 것들을 잘라내고 도려내서 마침내 신데렐라의 신발에 발을 우겨넣을 수 있게 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한, 자신을 잘라낸 고통은 승리의 별거아닌 대가일 뿐일 테니까. 그때에야 자신을 좀먹는 모든 공허와 불안과 너는 패배자라고 속삭이는 목소리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내가 너무 구식이고 고리타분한 것일까? 나는 행복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자신을 개조하려고 해도 결국 외적 기준은 외적 기준일 뿐이고, 자신의 내적 기준은 또 다른 얘기다. 화려함은 외적 기준에 맞추는 데서 나올지 몰라도 행복은 자신의 기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외적으로 결혼, 직장, 외모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들이 실은 공허와 불행에 시달리기도 하는 것을 따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자신이 빠진 행복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진짜 패배자는 키가 180이 안 되는 남자들이 아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키큰 남자들한텐 매력을 못 느낀다.) 자기 기준 없이 외적 잣대에,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며 그 획일적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 그 불쌍한 사람들이 진짜 루저다. 타인의 시선에서 행복을 찾는 이상 행복할 수도 없고, 뿐만 아니라 남까지 불행하게 하려는 것이 그들이니까. 남의 신발에 맞추려고 자기 발을 잘라내는 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짓, 딱한 루저짓이 또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