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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7 표현의 자유가 눈이 내리는데 스미스씨는 서울에 간다 (2)
  2. 2008/06/27 선거에 이기려면 (6)


표현의 자유가 눈이 내리는데 스미스씨는 서울에 간다

2008/12/27 15:26  로키 TAG , ,
Mr. Smith Goes to Washington의 한 장면

항의편지를 쥐고 망연자실한 스미스

언론법과 집시법에 대한 논의를 보면서 나는 1939년 미국 영화 '워싱턴에 간 스미스씨 (Mr. Smith Goes to Washington)'를 떠올린다. 정치와 아무 상관없이 살아오던 젊은이 제퍼슨 스미스 (제임스 스튜어트 분)가 얼떨결에 상원의원이 되어 워싱턴의 위선과 부패에 맞서는 내용인 이 영화는 언론 독과점과 시위의 자유 문제 역시 극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특히 시의성이 있다. (스포일러가 싫은 분은 다음 문단은 건너뛰길)


영화 속에서 부패의 누명을 쓰고 상원에서 제명당할 위기에 처한 스미스는 동료 의원의 부패를 폭로하고 오명을 벗으려고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영화의 악역이자 부패의 배후인 짐 테일러는 (에드워드 아놀드 분) 스미스의 출신 주에서 모든 신문과 방송을 장악한 재벌이다. 테일러는 자신이 소유한 언론사에 지시해서 스미스를 부패한 의원으로 힐난하는 보도를 대대적으로 시킨다. 스미스에 대한 진실을 알리려고 전단지를 찍고 거리에 나선 소년들의 시위는 폭력적으로 진압당한다. 그 결과 스미스가 대표하는 주민들은 스미스가 잘못이라고 굳게 믿어버리고, 그를 비난하는 엄청난 양의 우편물이 의회에 도착한다. 이미 신체와 정신이 한계에 달한 스미스는 그 편지들을 보고 무너지듯 쓰러진다.


언론 독과점과 집회와 시위의 자유 제약이 민주주의에 치명적인 이유를 '워싱턴에 간 스미스씨'는 아주 단순하고도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유가 형식적 자유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은 중학교 역사 교과서만 봐도 안다.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국가에서 어느 정도 바로잡지 않으면 권력과 재력을 독점한 일부는 가히 전제적인 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며, 나머지는 죽을 자유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현대 민주국가라면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할 권리, 미성년자 노동에 대한 규제, 노동시간과 조건 제한 등을 법으로 정하고 있게 마련이다. (노조 결성권은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으로도 규정하고 있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다는 형식적 자유가 평범한 시민에게 얼마나 억압적이고 비참한지는 역사가 알려주고 있으니까.

언론의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얼마든지 언론사를 차릴 수 있다는 형식적 자유는 현실적인 재력의 불균형 때문에 언론 독과점을 사실상 조장한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근로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형식적 자유가 노예제나 다름없는 상황을 조장했듯이. 일부 돈이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 언론을 모두 장악하면 '워싱턴에 간 스미스씨'에서처럼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이란 극히 일부의 전유물이 된다. 민주주의의 근본인 다양한 시점과 의견이 자유롭게 경합하는 시장을 말살하는 그런 형식적 자유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닌 귀족정이다.

대통령이라고 이런 간단한 역사적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아니, 오히려 너무 잘 아니까 그런 입법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와 그들이 원하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닌, 힘있는 이들 몇몇만을 위한 사회이니까. 불편한 저항과 다양하게 불거져 나오는 반대의견을 비애국적이라거나 친북이라거나 좌파라거나 하는 단순한 이름으로 일축할 수 있는 깔끔하고 일사분란한 사회가 그들의 이상향이니까. 국가과 재벌이 손잡고 점점 불평등하고 비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군국주의로의 회귀야말로 그들의 영원한 꿈이다. 반대를 두려워하고 다양성이 싫은, 상상력이 메마르고 지적으로 빈곤한 불쌍한 자들이 구하는 위안이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두려우면서도 우습다.

그래서 지금 내 블로그에는 표현의 자유가 눈이 내린다. 이 긴 밤이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미약한 등불을 들어보인다. 남들도 볼 수 있게, 같은 불빛을 보고 불안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게, 그리고 어쩌면 참 멀어만 보이는 그 여명을 불러들일 수 있도록. 터벅터벅 서울로 걸어가는 스미스씨의 지치고 외로운 뒷모습 위로는 우리 모두의 염원이 조용히 눈이 되어 내린다.
2008/12/27 15:26 2008/12/2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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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inavi
    2009/01/02 09:27 PERMALINK EDIT/ERASE REPLY

    진심으로 공감. 뛰쳐나가서 함께할 용기까지는 없지만, 마음으로 지지를 보낸다. 더 이상 군국주의로의 회귀가 계속된다면 (용기없는 나는) 광장에는 차마 나서지 못하고 비밀 결사대를 조직하는 시인이 될지도 몰라.

    • 로키
      2009/01/06 14:08 PERMALINK EDIT/ERASE

      비밀 결사대라니, 슬픈 일이군. 나라가 어찌 될른지,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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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이기려면

2008/06/27 03:55  로키 TAG , , ,
얼마 전 촛불시위 이후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는데, 그 글에 썼듯 기업주의적 이익과 친일, 군사정권의 잔재, 종교적 극우 등의 권위주의적 세력이 다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을 막으려면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는 진보, 아니면 최소한 비군국주의, 비극우 후보가 출마하고 또 뽑혀야 한다. 애당초 지금의 대통령 같지도 않은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정치적 대안이 너무나 빈약해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중요성이 더욱 와닿는다.

그렇다면 생각나는 꽤 근본적인 질문. 말이 좀 되는 후보가 선거에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답을 제대로 알면 골치아픈 공부 안 하고 선거 전략가가 되어 돈을 떼로 벌고 있겠지만, 최소한 도움은 되는 내용을 이전에 온라인 비디오 (영어, 외부 링크)로 봐서 소개하고자 한다.

비디오 강연은 언론매체 연구 기관인 Media Matters의 폴 왈드만 (Paul Waldman)이 자기 책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책 제목은 '옳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수의 성공에서 진보가 배울 점' (Being Right Is Not Enough: What Progressives Must Learn from Conservative Success)이라는 제목인데... 길어서 왠지 폭력욕이 생기기는(?) 하지만 어쨌든 제목에서 대충 내용이 나오긴 한다.

왈드만이 제시하는 공화당의 성공 요인이자 민주당, 나아가가서는 어느 나라든 진보당이 배워야 할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개인적 의견도 추가해서 논지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진보당이 선거에 지는 건 정책이 지지를 못 받아서가 아니다. 언론 조사 결과를 보면 대개의 시민은 진보적 정책을 지지한다. 꽤 당연한 일이다. 진보 정책은 서민에게 우호적인 게 기본이고, 그렇지 않은 당은 진보적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따라서 내용만으로 본다면 선거마다 진보당이 휩쓸어야 한다. 그런데 왜 현실은 그렇지 않을까?

답은 다들 알겠지. 대다수의 유권자는 정책을 보고 투표하지 않는다. 각 후보 정견을 자세히 보는 사람이 인구 중 몇%나 될까? 미국보다 우리나라는 좀 낫다고 보지만, 그렇다 해도 왠만큼 정치에 관심 있고 정보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거 일일히 보고 분석해서 투표하는 일은 없다. 게다가 사실 공약을 내건다 해도 지킨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투표할까.

대다수의 유권자는 정책이 아닌 사람을 보고 투표한다고 왈드만은 말하고 있고, 내가 보기에도 그게 현실에 맞는다. 정책을 골치아프게 따지는 대신 그 사람에 대한 느낌으로 투표한다는 얘기. 먹물 좀 먹은 사람들은 그 점을 욕하지만, 위에 얘기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 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왔는지 보는 건 말보다 확실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후보를 개인적으로 아는 게 아닌 이상 '사람'이란 결국 이미지라는 점. 그리고 보수당 후보는 정책으로 싸우면 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더욱 선거를 정책이 아닌 사람 문제로 끌어가려고, 자신과 상대의 이미지를 끝없이 정의해간다. 나는 여러분의 전통을 지켜줄 사람, 저쪽 후보는 전통을 무너뜨리려는 위험분자 하는 식으로.

그래서 선거란 결과적으로 자신과 상대의 이미지를 정의하는 싸움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을, 그리고 상대방을 정의하는 데 실패하면 선거에 이기기는 어렵다. 상대는 전통의 수호자, 자신은 전통의 적 하는 식으로 시쳇말로 '말려'버리면 그게 곧 자신의 공적 얼굴이 된다. 반면 상대는 서민의 적, 자신은 서민의 수호자로 정의할 수 있다면 훨씬 싸워볼만 하다. 그렇다면 자신과 상대를 정의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에 대해 왈드만은 두어 가지 제안을 한다.

우선, 구체적 정책보다 기반 신념을 우선 제시한다. 이게 보수에서 아주 잘하는 것이기도 한데, 구체적인 내용은 얘기 안하고 (어차피 신경쓰는 사람 별로 없고,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면 찍을 사람 별로 없..) '전통' '안전' '자유' 같은 구호에 강한 것이 그 이치다. 복잡한 내용은 찾아보려면 누구나 찾아볼 수 있지만, 매체상의 스쳐가는 이미지 싸움에는 일단 강하고 단순한 표어를 제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진보 쪽에서도 기반 신념을 표현하는 구호 싸움에 주눅이 들 이유가 없다. 구호 이면의 알맹이까지 충실하니 더욱.

이와 관련해 왈드만은 진보의 기본 신념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 (We're all in it together)로 요약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공공 의료보험, 사회보장제도, 차별 철폐 등 진보적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복잡할지 몰라도, 그 배후에는 결국 사회 구성원 중 억압받거나 비참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곧 나의 일이라는 신념이 깔려 있다. 이렇듯 복잡한  함의를 단순하게 요약해 표현하면 이미지 만들기에는 한결 좋다. 반대로 상대방 후보는 강자만을 위한 착취적 사회,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심을 대표한다고 정의해가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고.

또한, 왈드만은 뚜렷한 신념과 정견으로 자신을 정의하라는 충고도 한다. 정책의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유권자는 우유부단하고 의기소침한 후보보다는 뭔가 확고하게 믿고 추진하는 정책이 있는 후보에게 더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심지어는 그 후보의 신념이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언가 그 사람을 대표하는, 그리고 그 사람이 일관적으로 추진해온 정책이 있다면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생길 뿐 아니라 그 정책에 대해 유권자의 주의도 환기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그런 것이 바로 후보를 정의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고.

정책이 아니라 정치로 선거로 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선거의 진정한 효용은 정치에 무능하면 정책에도 무능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선거 중 후보로서의 자신을 팔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당선되더라도 정책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까? 여론과 이익 충돌, 정치적 반대의 모든 장애를 뚫고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결국 정책을 제대로 펼치려면 정치도 잘해야 한다. 자신을 팔아서 당선되는 기술은 정책을 파는 기술과 직결된다고 본다.

물론 진보를 정치와 이미지 만들기에 무능하게 하는 구조적인 요소도 많다. 언론의 기업 지배와 소유 독점에 따른 편파성이 대표적이겠지. 왈드만이 있는 단체 Media Matters 역시 그런 편파성을 연구하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일을 하고 있고. 그래서 정치를 바꾸려면 선거운동만으로는 부족하기도 하다. 정책 연구, 언론 비판, 시민운동 등 종합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왈드만이 한 얘기 중 흥미로운 것은 권력에 대한 진보의 불신이다. 권력을 원하는 보수파에 반해 진보의 이상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라고. 물론 비판과 저항은 민주 사회의 기반이지만, 권력을 잡고 정책을 펼칠 수 없다면 변화는 반쪽일 수밖에 없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민권운동을 하고 그 여론을 반영해 린던 존슨 대통령이 민권법을 통과시킨 환상의 합작에서 볼 수 있듯, 시민 저항과 정치적 의지가 둘다 필요하다. 그 수단은 정치이며, 그것이 정치를 하고 선거에 이겨야 하는 이유이다.
2008/06/27 03:55 2008/06/27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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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7 11:35 PERMALINK EDIT/ERASE REPLY

    본문과 완전히 상관없는 내용인데....
    글 읽으러 왔다가 아래 RECENT FEED 맨 위에 보이는 글이 HOOTERS니까..
    왠지 섬칫. (...)

  2. 2008/06/27 18:02 PERMALINK EDIT/ERASE REPLY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분명히 '경제 살리겠읍니다' 라는 이미지를 틀어잡기는 했어(...) (그게 '서민 경제'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치명적인 문제지만)

    어쨌든, 이번 촛불집회가 순기능적으로 작용한다면, 이후 권력 및 보수 언론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활성화될 것 같아. (제발 그렇게 되야지!)

    • 로키
      2008/06/27 23:08 PERMALINK EDIT/ERASE

      그렇게 되어야지. 비판과 저항을 넘어서 학술, 언론, 그리고 정치 등 다각도의 노력이 있어야 극우의 횡행을 막을 수 있을 테고.

  3. 기생수
    2008/07/05 23:38 PERMALINK EDIT/ERASE REPLY

    지난 포스트중에 흥미있는 제목이 눈에 밟혀서 읽어봤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이념으로 요약되는 진보의 범주에서 (연성)보수에 해당되는 전통적 민주당 계보를 제외하고 이야기한다면... (제외하는 이유는 한국 민주당 계보의 정체성이 본문의 진보의 정의에도 어느정도 부합하지만, 한나라당이 정체성을 담고 있는 극우적 가치에도 어느정도 편승하는 면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제외. 그러나 어느정도는 아래의 내용에 민주당 계보역시 영향받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사실 제가 보기엔 진보쪽에서도 내용보다 이미지, 정책보단 간단한 신념을 밝히는 쪽을 우선으로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긴해요. 저번 총선에 10석을 차지한 민주노동당의 약진도 권영길의 이미지와 더불어 그외의 면에 있어서 본문의 원칙에 충실했죠.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물론 이번에는 '내부문제'로 뜬금없는 코리아연방공화국 공약으로 캐삽질)


    진보자체가 선거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이유는 본문에서 지적된 소유된 미디어의 편파성 이외에도 한국적 특수성... 그러니까 왜곡된 극우이념적 성공신화('한강의 기적')와 반공주의('공산주의는 실패했다'->'진보는 공산주의적 유사 가치를 신봉한다.'->'따라서 진보 역시 실패한다.)의 영향이 있어보여요. 말하자면 박정희로 대표되는 극우적 자본주의 가치로 재미를 봤던 역사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그 외의 대안을 '비현실'로 보는 경향이랄까요. 일단 지금으로서 박정희의 유산의 적자는 한나라당 쪽이라고 일반적으로 믿어지니까요. 소련/중국/북한식 공산주의의 몰락과 한국 좌파의 모델이 되고 있는 유럽식 복지국가들의 좌파를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보는 경향도 있구요.


    진보정당들의 인물과 신념을 열심히 알리고 모두 공감해도 '그러나 현실은...' 이라며 결국에는 기존에 알고 있던 극우 자본주의적 세계관과 신화에 충실한 결정을 하는게... 제가 아는 한도내에서 결국 진보 진영에 표를 주지 않는 원인이더군요. 요약하면 유권자가 생각하는 '현실'의 범주의 문제. 즉, 유권자의 세계관/신념체계/스키마의 문제. 진보정당들이 같은 노력을 한다쳐도 재미를 못보는 이유. 한국의 과거 근현대사를 재평가/재해석하는 문제가 미래를 결정하는 치열한 싸움이 되고 있는 이유. 뉴라이트든, 진보진영이든, 민주당계보든, 민족주의자들이든 이점의 중요성을 깨달았기에 끊임없이 과거사 문제가 거론되어 나오고 있기도 하구요.


    한국 유권자의 (자각하지 못하는) 일반적 이념/신념이 일단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중립적이지 않고, 진보진영에 호의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보니... 이러한 세계관과 신념을 바꾸지 않는한 선거에서 최소한 진보의 대안이 '현실적'이라고 믿게하는 방법은 어지간한 큰 충격(IMF 위기사태에 준하는? 그래서 진보정치인중 일부는 '이명박의 당선'을 긍정적으로 보기도 했습니다.(...))...이 아니면 매우 어렵겠죠. 이런 부분은 스스로 자각해서 일부러 마음을 열거나 애쓰지 않는한 죽기전에 바뀌지 않는게 보통인지라... 좀 까마득하기도 하구요. 불에 데어봐야 뜨거운걸 아는 수준을 넘어설 수는 없는거냐?는 한탄도 나올만한 대목이죠.


    진보의 권력에 대한 불신이라... 글쎄요. 일단 민주당계보를 애써 진보범주에 넣는다면 전혀 해당이 안되는 말인 것 같고...... 좀더 좌파쪽의 진보진영의 일각을 차지하는 사민주의자들은 목표성취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서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가 첫째인지라, 권력이 목표에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건 최소 전제일듯해요. 최소한 그부분은 원론 차원에서 착각하지 않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미국쪽의 진보진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본문의 그부분의 내용은 어쩌면 저자의 미국적 현실을 반영한 내용?

    • 로키
      2008/07/06 23:26 PERMALINK EDIT/ERASE

      오호, 재밌군요. 확실히 진보라고 해도 우리나라하고 미국의 현실은 많이 다르네요. 다만 데어봐야 깨닫는다는 점은 비슷할지도요. 미국도 부시 2세를 몇 년이나 겪고서야 진보가 정신 차리고 있으니까요. (먼산)

      지금 판도는 근현대사에 기인하는 게 많다는 점도 흥미롭네요. 그래서 정치를 바꾸는 건 우리 현대사를, 어쩌면 우리나라 자체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데서 시작할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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