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나도 조금은
종교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까지 별 그럴 기미는 없네. 특별히 더 사후세계에 대한 갈망이 생기지도 않고, 신을 믿고 싶어지지도 않아. 그렇다고 사후세계나 신이 없다고 단정해버린 것도 아니고, 내 기본적인 생각은 '알 수 없다'는 것.
영혼이 있는지, 있다면 육체가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는 지식의 영역이 아닌 만큼 신앙의 영역일 수밖에 없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또 종교마다 달라서 어느쪽을 믿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고. 각자 자기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는데 말야. 어렸을 때 무지막지하게 고민한 문제고, 교회를 떠난 지금도 어느 종교가 '옳은지' 논리적으로 헷갈리는 건 여전해.
사후세계가 있어서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야 좋겠지.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기독교 교리가 옳고 지옥이 있고 천국이 있고 하다면 좀 문제긴 해. 난 아무리 해도 기독교인은 될 수 없는 것 같고, 엄마는 독실하셨으니까 다시는 못 만나는 거잖아?
하지만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가 옳다면 그건 또 어찌 되는 거려나. 결국 불확실한 도박에 걸고 나에게 유일한 확실성인 이번 삶을 불행하게 사느니, 나 생긴 대로 살겠다는 결론. 엄마는 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셨으니까 그 결정을 제일 기뻐하실 거라고 믿어.
내가 별로 신심이 없는 걸 엄마아빠가 늘 걱정하신 건 알고 있어. 엄마 돌아가신 일로 유일하게 생긴 종교적 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라면 내가 신을 안 믿어서 엄마가 돌아가셨나 하는 공포와 죄책감. (어렸을 때부터 내게 늘 기독교의 신은 공포와 자책으로 다가오더군.) 나도 왕년엔 간증집깨나 읽었는데, 그런 데 보면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아서 사업 망했고 가정에 재난이 닥쳤고 등등 얘기 나오잖아.
하지만 그건 좀 받아들이기가 그런 게, 첫째, 일단 엄마의 죽음이 내 탓이라는 쪽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마 그대로 미쳐버릴 테고, 둘째, 내가 안 믿는다는 이유로 엄마를 데려갔다면 그런 신은 도저히 믿을 수 없기도 하고. 또 셋째, 엄마가 정기 검진만 받으셨어도 암이 말기가 될 때까지 방치되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점에서도 그게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워. 제일 화가 나는 점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죄책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아마 우리 가족 모두 엄마 생전에 잘 못해드린 거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괴로워하고 있을 시점이고, 그건 아마도 평생 어느 정도는 남을 괴로움. 그렇게 많은 걸 해주셨는데 내가 해드린 건 뭘까. 다행히도 나름 노력하고 배려한 기억도 많고, 사랑한다고 말한 기억도 많지만 그래도 좀 더 많이 잘해드릴 걸. 어차피 충분할 수는 없었겠지만 말야.
그 괴로움을 무디게 하려는 목적으로라도 신앙을 가져야 할까? 하지만 그런 이유로 믿는 건 치료약이 아니라 진통제나 다름없잖아. 난 어디 통증이 있어도 내가 스스로 진통제를 찾아먹은 일은 한 번도 없어. (어려서 귀 수술했을 때나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 진통제를 줬을 수는 있지만.) 진통제는 고통의 원인은 무시하고 증상만 무디게 하니까.
마찬가지로 정신적 진통제처럼 종교를 삼킬 생각도 없어. 내가 종교인이 되는 일이 있다면 내 영적 성장을 위해 필요해질 때 믿어야지, 지극히 자연스러운 심적 고통을 달래려고 종교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아. 종교는 내게 대체로 위안보다는 불안과 죄책감의 근원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나마 진통도 제대로 될 것 같지 않고.
하지만 내게 종교가 있든 없든, 사후세계가 있든 없든 엄마는 내 안에 계셔. 함께했던 시간들은 아픔과 기쁨의 색채로 내게 새겨 있고, 엄마가 말과 무엇보다 행동으로 주신 가르침들은 앞으로도 나를 인도할 테니까. 다른 사람에게 남은 기억과 흔적이야말로 진정한 영생이 아닐까. 그건 죽음 후에 뭐가 기다리는지 모르는,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인간인 내가 가장 바라는 형태의 영생이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