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ing for V for Vendetta
1 articles found.

  1. 2009/12/26 출근 전철에서 V for Vendetta를 읽다


출근 전철에서 V for Vendetta를 읽다

2009/12/26 11:35  로키 TAG , ,
V for Vendetta
만화계의 전설 앨런 무어 (Alan Moore)가 글을 쓰고 데이빗 로이드 (David Lloyd)가 그린 만화 V for Vendetta (이하 내멋대로 번역인 '복수극의 V'라고 칭하겠다)는 영화판이 나올 때 알려졌듯 V라고 자칭하는 테러리스트가 주인공이다. 전체주의 정부에 맞서는 무정부주의 테러리스트의 이야기는 반향과 논란을 함께 불러일으켰다. 정치적 폭력에 정당화의 여지가 있는가, 테러리스트가 영웅일 수 있는가 등등.1

미어터지는 출근 지하철에 서서 읽기 시작해서 그럴까, 내가 이 책을 본 관점은 좀 달랐다. 정치적 의도의 폭력과 테러리즘에 대한 논의는 이미 봐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폭력의 문제 자체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지하철이라는 상황과 작품의 연관성이었다. 이곳, 왜 이 많은 사람이, 내가, 우리가 새벽부터 이 미어터지는 출근 전철을 메우고 있는가? 하는 새삼스런 놀라움.

'복수극의 V'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정치적 폭력의 문제일지 몰라도 그 출근 전철에서 나는 우리 사회, 특히 서울이라는 곳에 만연한 경제적 강제력을 실감했다. 우리들은 왜 새벽부터 고단한 몸을 이끌고 가축처럼 기차칸에 우글우글 몰려 인구 천만의 도시로 꾸역꾸역 몰려드는가? 개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거대하고 엄정한 경제적 논리가 우리들을 이 전철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왔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있으면 흔히 들 수 있는 생각이지만, 다들 똑같아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에, 문이 한 번 열릴 때마다 쏟아지듯 몰려들어오는 지친 몸들이 순간 공포스러웠다. 마치 우리가 정말로 가축칸에 누군가 몰아넣은 짐승인 것처럼, 각자의 생각과 꿈과 욕구 같은 건 없이 몸으로서, 경제라는 기계를 돌리는 고기 톱니바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V에 나오는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이 개성은 아무래도 좋은 국가의 구성요소로서, 혹은 제거해야 할 방해물로서만 존재하듯이.

그때가 세 번째 중 처음 운 순간이었다. (미리니름)


가축 우리처럼 붐비는 출근 전철에서 읽기 시작한 '복수극의 V'라는 작품은 그래서 내게 개개인의 존엄성과 특별함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테러 그 자체보다도 더 근본적인 것, V가 전체주의 국가에 대항해 정치적 동기의 폭력을 행사하는 근본적인 이유인 개개인의 가치가 내게는 크게 와닿았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싸우는 V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어떻게 보면 역설적이지만, 다르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개인성을 대외적으로 숨김으로써 그는 역설적으로 어느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이 되니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고 싶다는, 부품이나 희생양이 아닌 자신의 가치와 존엄을 존중받고 싶다는 모든 인간의 염원의 표현이,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한 투쟁이 바로 V의 진짜 정체이며 의미이다.


주석
  1. 사실 누군가의 테러리스트가 다른 사람의 영웅이라는 건 이미 다들 잘 아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의사'라고 하는 안중근, 윤봉길 의사만 봐도--어렸을 때 로키는 이분들이 의사선생님인 줄 알았지만--객관적으로는 테러리스트 아닌가. 다만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를 표적으로 하는 폭력은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표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훨씬 정당화의 여지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돌아가기]
  2. the last inch - 번역본은 '마지막 부분'이라고 하지만 알아먹기 어려워서 '한 치'라고 하겠다 [돌아가기]
2009/12/26 11:35 2009/12/26 11:35
TOP

Writ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

submit